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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2000만명 실어증 환자, 이모티콘으로 대화할 길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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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전 세계적으로 2000만 명에 이르는 실어증 환자들은 말하는 건 물론이고 읽고 쓰기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다. 뇌졸중·뇌종양 등으로 뇌 부위가 손상되면서 언어 기능을 일부 혹은 전부 상실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실어증 환자들의 의사소통을 돕기위해 만든 '위모지' 앱.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실어증 환자들의 의사소통을 돕기위해 만든 '위모지' 앱.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이탈리아 법인이 지난달 28일 처음 선보인 애플리케이션(앱) '위모지'는 실어증 환자들이 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앱이다. 위모지(Wemogee)는 우리를 뜻하는 '위'(we)와 이모티콘을 뜻하는 '이모지'(emoji)의 합성어다. 이 앱은 의사소통을 못 해 그림을 그리거나, 손짓으로 대화하는 환자들이 스마트폰에서 이모티콘만 클릭해서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준다.

위모지 앱은 글자를 꺼리는 실어증 환자들에게는 이모티콘만 보여주고,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환자가 입력한 이모티콘을 텍스트로 번역해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실어증 환자가 "늦어서 미안해"를 표현하고 싶다면 시계, 우는 표정, 손바닥 모양의 이모티콘 세 개를 차례대로 입력하면 된다. 반대로 친구가 "화장실에 다녀올게"라는 문장을 입력하면 화장실 변기, 남자가 뛰어가는 모습, 느낌표 이모티콘으로 바꿔서 실어증 환자에게 전달된다. 위모지 앱은 아직 영어와 이탈리아어로만 서비스된다.

외신들의 위모지 앱에 대한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간단하고 직관적인 사용 방법은 실어증 환자에게 새로운 대화와 치료 기회를 만들어준다"(테크크런치), "똑똑한 아이디어 하나가 환자와 가족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더버지)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이탈리아 법인이 위모지 앱을 기획한 계기는 단순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이모티콘의 기원은 3000년 전 인류가 사용한 상형문자'라는 기사에서 영감을 얻었다. 마리오 레브라토 삼성전자 이탈리아 법인 대외협력 대표는 1일(현지시간)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에만 20만 명이 넘는 실어증 환자를 도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국가와 언어의 구분 없이 쓰는 '만국 공통어' 이모티콘을 활용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리오 레브라토 삼성전자 이탈리아 법인 대외협력 대표.

마리오 레브라토 삼성전자 이탈리아 법인 대외협력 대표.

  삼성전자 이탈리아 법인은 밀라노에서 내로라하는 신경과 의사, 언어치료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위모지 앱에서 쓸 수 있는 140가지 문장은 단순히 이모티콘만 나열한 것이 아니다. 개발에 참여한 언어학자와 의료진은 '어떻게 하면 이모티콘들 간 언어적 맥락을 연결시켜서 문장처럼 이해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6개월간 진행된 실질적인 앱 제작과 개발 과정은 삼성전자가 운영한 '앱 아카데미' 수업을 들은 대학생·취업준비생 90여 명이 주도했다.

 레브라토 대표는 "앱 출시 전 실어증 환자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앱을 사용해 본 결과, 환자들이 소통하는 데 있어서 거부감이 줄어들고 병세도 개선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환자들에게 의사소통을 시도할 때마다 좌절했던 가족들도 위모지 앱에 대해 크게 만족했다"고 설명했다.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 앱만 내려받아 설치하면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단순한 자금 지원에서 기술을 통해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쪽으로 사회공헌 활동의 방향을 바꾼 것도 위모지와 같은 앱이 나오는 데 일조했다.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스페인 법인이 난독증을 조기에 예방, 진단할 수 있는 앱 '디텍티브 포 삼성'을 선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페인에서 난독증을 연구하는 15개 전문기관과 100여 개 대학이 손잡고 만든 이 앱은 15분간의 테스트로 난독증 여부를 빠르게 진단할 수 있다. 진단 정확도도 90%에 이른다.
지난해 6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적인 광고제 '칸 라이언스'에서 모바일 부문 금상을 수상한 ‘블라인드 캡’(삼성전자 스페인 법인 개발)은 시각장애인 수영선수가 제때 회전하거나 멈출 수 있게 진동 센서로 알려주는 수영모다.

 2015년 삼성전자 튀니지 지점이 만든 '백업 메모리' 앱은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소중한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게 도와준다. 먼저 환자의 가족이나 환자 본인이 이 앱에 프로필과 사진 등의 정보를 입력한다. 백업 메모리 앱에 등록된 인물이 환자에게 다가오면 자동으로 이름·사진 등의 정보가 스마트폰에 뜬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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