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떨리며 번지는 음정, 윤이상 음악은 한 폭 수묵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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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음악학자 홍정수씨가 40년 넘게 연구해온 윤이상의 독창성을 설명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 자택 모니터 앞에 섰다. 모니터 속 인물은 윤이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음악학자 홍정수씨가 40년 넘게 연구해온 윤이상의 독창성을 설명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 자택 모니터 앞에 섰다. 모니터 속 인물은 윤이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18일자 문화면 3분의2를 작곡가 윤이상(1917~95)에 할애했다. “삶과 작품에서 유럽과 동양 문화를 연결한 작곡가” “음악에 인간 중심의 메시지를 담았다” “한국에서 수감됐을 때는 서독 정부는 물론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이 구명 운동을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올해는 윤이상의 탄생 100주년이다.

음악학자 홍정수가 본 윤이상 #“최전선 전위파와 싸우는 작품 쓸 것” #도교 사상 바탕으로 독창적 음향 추구 #논리 대신 연상, 직선 대신 굽은 소리 #서양 음악계 계산적 음향에 충격파

그만큼 세계적인 작곡가다. 한국보다 유럽, 특히 독일에서 작품 연주가 빈번하다. 유럽의 어떤 연주자들은 윤이상을 해석하는 일에 활동의 초점을 맞춘다. 물론 국내에서도 이름은 널리 알려져있다.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 수감, 석방 후 독일 정착, 그리고 말년까지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돌아오지 못한 스토리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윤이상이 왜 세계적 작곡가인가?’ ‘그 음악은 어떤 부분이 독창적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윤이상을 40년 이상 연구한 음악학자 홍정수(70·전 장로회신학대 교회음악과 교수)가 100주년을 맞아 그 답을 정리했다. “그간 신문 사회면에 주로 나왔던 윤이상의 음악적 독창성은 밤새워 논할 수 있는 주제”라며 예가 될 수 있는 작품도 선곡했다. 윤이상이 창작기간 36년(1968~94)동안 작곡한 118곡은 거의 모두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

윤이상은 ‘감정적’이라는 점에서 같은 시대 작곡가들과 구별된다. 홍정수는 “20세기의 여타 음악과 달리 윤이상의 음악에는 유럽 청중이 눈물을 보인다”고 했다.

1974년작 ‘메모리(Memory)’는 귀국에 대한 윤이상의 희망이 꺾인 상태에서 나왔다. 김대중 납치사건 이듬해였다. 홍정수는 “이 사건으로 좌절한 마음을 음악에 그대로 담았다”고 평했다. 소프라노가 길고 모호한 음으로 노래를 시작하면 다른 두 명의 독창자가 가세한다. 타악기들도 쓰이는 음악은 점점 복잡해지고 활발해지다가 결국 조용히 끝난다. 대표적인 윤이상 스타일이다.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영상들이 유튜브에 많이 올라있다. ‘메모리’. [사진 유튜브 캡처]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영상들이 유튜브에 많이 올라있다. ‘메모리’. [사진 유튜브 캡처]

이 작품의 텍스트가 윤이상의 마음을 대변한다. 윤이상은 당나라 시인 두목(803~852)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를 가사로 썼다. 오랜만에 찾은 부모의 묘소가 헝클어져있는 것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윤이상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담아냈다. 홍정수는 “분노하는 격렬한 음향, 날카롭게 소리 지르는 악기들은 서러운 감정과 슬픔으로 듣는 사람을 직격한다”고 말했다. ‘밤이여 나뉘어라’(1980), ‘화염 속의 천사’(1994)의 절규에는 절제가 없다. 극도로 이성적인 작곡을 추구했던 20세기 초반의 작곡가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유럽 연주자 선택 빈도 톱5

유럽에는 윤이상을 전문으로 다루는 연주자가 많다. 홍정수는 “유럽 연주자들이 다루는 빈도로 치면 톱5에 윤이상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연주 친화적이다. 윤이상은 악기 연주를 연습할 수 있는 작품을 많이 썼기 때문에 ‘연주 가능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음악적 전통과 급격하게 결별하지 않았다. 같은 시대 작곡가들은 조성을 완전히 파괴하고 음계에서 중심을 없앴다. 하지만 윤이상은 음악 안에 전통적인 화음을 숨겨놨다.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영상들이 유튜브에 많이 올라있다.  ‘비올라 두 대를 위한 사색’. [사진 유튜브 캡처]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영상들이 유튜브에 많이 올라있다. ‘비올라두 대를 위한 사색’. [사진 유튜브 캡처]

‘비올라 두대를 위한 사색’(1988)은 얼핏 들으면 어렵지만 사실은 전통적·기초적인 화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첫 음을 비롯해 길게 지속되는 음들은 20세기 이전 음악의 기틀을 이뤘던, 듣기 좋은 협화음(라·도·미)이다. 하지만 중간의 다른 음들에 간섭을 받기 때문에 확실한 협화음으로 들리지 않을 뿐이다.

홍정수는 “윤이상은 39세에 유럽에 간 후 자신이 20세기 서양 작곡가들처럼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름대로 대응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윤이상은 부인에게 “나는 최전선의 전위파와 싸우는 작품을 쓰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 최첨단의 작곡 기법과 멀어지며 찾은 무기가 한국 음악이다.

#음악 안에 전통적 화음 숨겨놔

윤이상의 음악은 논리가 아니라 연상에 의해 흘러간다. 소리는 직선이 아니고 구부러져 있다. 즉 윤이상의 음악은 당시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던 음악 어법을 뒤집는다. 윤이상이 서양 음악계의 중심에 선 데는 이같은 새로움이 있었다.

출세작인 관현악곡 ‘예악’(1966년)에서 음정은 모호하다. 음정은 물의 흐름처럼 변한다. 홍정수는 “음정이 확정되지 않고 아래 위로 조금씩 흔들리며 번지는데, 이건 수묵화로 이해하면 된다”며 “윤이상은 수묵화와 붓글씨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하려 했다”고 했다. 소리는 떨고, 미끄러지고, 다른 음으로 번진다. ‘예악’에서 윤이상은 오케스트라의 하프로 가야금, 플루트로 피리 소리를 연상하게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독창성은 단지 서양 악기로 한국 음악의 소리를 추구했다는 데에 있지는 않다. 당시 철저히 계산적 음향을 추구하던 서양음악계에 윤이상은 오묘함·현묘함이라는 키워드를 던졌다. 홍정수는 “확실한 무엇으로 특정할 수 없는 도교적 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윤이상의 음악에 세계 음악계가 경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영상들이 유튜브에 많이 올라있다. ‘예악’. [사진 유튜브 캡처]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영상들이 유튜브에 많이 올라있다.‘예악’. [사진 유튜브 캡처]

윤이상은 서양음악의 최첨단 기법을 배워 고국에 이식하겠다는 생각에 유럽으로 떠났다. 하지만 현지에서 “여흥 삼아 들었던 고국의 음악을 보배로 깨달아”(1986년 강연내용 중)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고 결국 세계 음악계의 중심부에서 인정을 받았다. 음악학자 최애경은 지난달 통영국제음악제 심포지움에서 “윤이상의 삶과 음악은 과거에 대한 기억과 성찰이 새로운 창조의 길을 찾게 해준다는 예”라며 “윤이상 10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 기억을 이어간다는 의미”라고 정리했다.

◆홍정수

한국외대 이태리어과 졸업,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음악학 박사, 전 장로회신학대 교회음악과 교수.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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