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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드 비용에 대한 미국 내 혼선부터 정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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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비용을 한국에서 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요구가 거듭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측 반발이 거센 줄 알면서도 지난달 29일 인터뷰를 통해 “왜 우리가 사드 배치 비용을 내느냐”며 “한국이 비용을 지불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트럼프가 한 발언이 물정 모르고 한 소리일 수 있다는 항간의 추측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그는 사드 장비 운영·유지는 미국이, 부지 및 기반시설은 한국이 각각 부담키로 한 원칙을 알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한 게 틀림없다.

처음 배치 제안한 미국 측 부담 당연 #한·미 실무 책임자들이 수습 나서야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30일 오전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드 배치 비용을 미국 측이 부담한다”는 기존 합의를 재확인했다고 한다. 트럼프가 쏟아낸 악재를 비중 있는 미국 측 인사가 진화하려 했다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국인들의 분노와 한·미 동맹에 대한 불신을 가라앉히기에는 미흡하다. 국무 또는 국방장관 수준의 인사가 나서서 확실히 이야기해야 혼선을 정리할 수 있다.

일의 시작과 경과를 따져보면 사드 배치 비용은 미국 측이 부담하는 게 백번 옳다. 우선 2014년 사드 배치를 처음 제안하고 본격 추진한 건 커티스 스캐퍼로티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다. 사드는 도입 여부가 거론되기 시작할 때부터 격렬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 방어체계가 적의 미사일을 제대로 격추할 수 있느냐부터 시작해 배치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어 반대 여론이 들끓었던 게 사실이다.

더욱 심각한 건 중국의 격렬한 반발이었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저지하기 위해 오만 가지 경제적 보복을 가해왔으며 우리 기업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나라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주한미군 장병을 적의 미사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드 배치를 추진해왔다. 심지어 경북 성주에 배치하면 수도권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를 지지해 온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미 국방부조차 사드 배치 비용의 미국 부담을 당연시한다고 한다. 그간 한국이 얼마나 고통을 참아가며 이 문제를 진행해 왔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로서는 한국이 사드 배치 비용을 내야 한다는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사드 배치에 반대해 온 진보 세력들은 물론 적극 지지해 왔던 보수층들까지 격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사안이 한·미 동맹에 얼마나 치명적인 악재인지 깨달아야 한다. 소탐대실(小貪大失)하다간 한국인의 마음까지 잃을 수 있다.

미국은 대통령과 그의 핵심 참모가 딴소리를 하는 현재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하루빨리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양국 장관급 수준에서 빨리 혼선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핵탄두를 장착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이 코앞에 다가온 엄혹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