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바른정당 후보사퇴 요구, 명분이 없지 않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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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바른정당 의원 20명이 어제 ‘3자 후보 단일화’를 또다시 요구했다. 형식적으론 좌파 집권을 막기 위한 후보 단일화를 내세웠다. 하지만 내용적으론 자기 당 대선주자인 유승민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진정성을 보여달라’고 압박했다. 유 후보는 “자기 당 후보를 어디에 팔아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어차피 정당은 선거를 통한 권력 쟁취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게 현실이다. 야권이 절대적으로 압도하는 선거판에서 보수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또 대선전에서 단일화 논의란 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다자 구도 선거전에서 단일화는 당락을 가르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당선 가능성 없는 후보가 완주해 반(反) 문재인 전선에 균열이 생기는 걸 걱정하는 일부 보수 유권자를 의식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바른정당에서 재차 터져나온 ‘유승민 흔들기’는 명분이 없는 데다 현실성도 떨어진다. 바른정당이 “국정 농단 세력과 결별해 새로운 보수를 세우겠다”고 다짐한 건 불과 석 달 전이다. 상황 변화라곤 없는데 자기들이 만든 규칙으로 뽑은 자기 당 후보를 거듭 사퇴하라니 그렇다면 ‘분당은 왜 했느냐’란 의문이 남는다. 낮은 지지율 책임을 유 후보에게만 떠넘길 것도 아니다. 유 후보는 오히려 TV토론 등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의 영입 과정에서 정치 행보가 꼬이고 중도 영역을 선점당해 입지가 좁아진 당의 태생적 한계가 크다.

대선을 불과 열흘 앞뒀다. 촉박한 일정을 고려하면 중도 보수 단일 후보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도 않다. 안철수 후보는 여전히 자강론을 앞세우고 있다. 게다가 설령 성사돼도 유권자 설득을 건너뛰고 만들어낸 기계적 결합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바른정당은 후보 사퇴보다 보수의 가치와 비전을 세우는 정책이나 메시지에 힘을 쏟는 게 옳은 길이다. 단일화를 그토록 원한다면 보수 중도 각 당이 정책 공조 방안을 먼저 찾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