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YES, 닭은 NO"…"살처분 유효" 말에 두 번 운 산란계 복지농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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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YES!, 닭은 NO!"
방역 당국이 달걀의 반출은 허용하면서도 달걀을 낳은 닭들은 살처분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논란이 일고 있다. 두 달 가까이 살처분을 거부해 온 전북 익산시 망성면의 '참사랑 동물복지농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예찰지역 전환…27일 달걀 5000개 출하 물꼬 #9만9000개 폐기 조건…살처분 실효성 논란

익산시는 28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농장 반경 3㎞ 방역대가 예찰지역으로 전환됨에 따라 그 안에 있는 참사랑농장의 식란(食卵) 반출을 이달 21일자로 허용했다"고 밝혔다. 해당 농장에서 AI 이상 징후나 의심축이 발생하지 않아서다.농장에서 키우는 토종닭 5000여 마리도 모두 건강한 상태다. 두 달간 네 차례 실시한 AI 검사에서도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

참사랑농장은 지난 27일 달걀 5000개를 한살림 로컬푸드 매장에 출하했다. 앞서 달걀 9만9000개, 3000만원어치는 땅속에 파묻었다. 익산시가 당초 농장에서 보관 중이던 달걀 총 21만개 가운데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기간(3월 6일~27일)에 닭들이 낳은 달걀은 전량 폐기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익산시는 예찰지역으로 전환된 지난달 28일 이후에 생산된 달걀 11만개만 출하를 허용했다.

전북 익산시 망성면 '참사랑 농장'에서 사육 중인 토종닭 한 쌍이 교미를 하고 있다.  [사진 참사랑 농장]

전북 익산시 망성면 '참사랑 농장'에서 사육 중인 토종닭 한 쌍이교미를 하고 있다. [사진 참사랑 농장]

농장 측은 "방역대를 풀면서 AI에 안 걸린 닭들은 죽여야 된다는 익산시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한 달 전에 예찰지역으로 전환됐는데도 익산시가 늑장 통보를 하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농장주인 유소윤(54·여)씨는 "유정란은 신선도가 중요한데 3월 28일 이후 한 달이 돼 간다"며 "팔 수 있다 해도 달걀 대부분을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빵공장 등에 땡처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살처분 집행을 두고 익산시와 대치하면서 농장 측은 사료값과 달걀값 등 1억원이 넘는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유씨는 "경제적 손실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익산시는 "살처분 명령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국가 정책을 거부해 이익을 얻으면 앞으로 누가 따르겠냐"는 논리다. 유희환 익산시 미래농정국장은 "행정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아직 AI가 최종적으로 소멸됐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익산시에 따르면 법적으로 AI 발생 농가에 대한 살처분 명령 권한은 자치단체장에게 있지만 3㎞ 이내 보호지역의 살처분 결정권은 농림축산식품부 가축방역협의회에 있다. 예방적 살처분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있더라도 정부가 방역 대책을 바꾸지 않는 한 익산시는 따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농장 측에 예찰지역 전환 사실을 늦게 통보한 데 대해 유 국장은 "AI 긴급행동지침(SOP)에 따라 예찰지역으로 바뀌면 달걀 반출이 가능하지만 참사랑농장의 경우 살처분 집행을 막고 있기 때문에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려 논의가 길어졌다"고 말했다.

유씨 부부는 2015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 기준(㎡당 9마리)보다 넓은 닭장(㎡당 5마리)에서 산란용 토종닭 5000여 마리를 풀어 키워 왔다. 하지만 지난달 5일 농장에서 2.1㎞ 떨어진 육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해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포함됐다. AI 확진 농장에서 반경 3㎞ 안에 있는 16개 농장의 닭 85만 마리는 모두 살처분됐지만 유씨 부부는 "건강한 닭들을 죽일 수 없다"며 버텨 왔다.

방역 당국과 법원의 판단은 익산시와 비슷하다. 유씨 부부는 지난달 살처분 명령 집행정지와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전북도에 제기했지만 "아직 AI 발병 위험이 상존한다"는 이유로 모두 기각됐다.
익산시장을 상대로 낸 살처분 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도 전주지법은 "살처분이 집행될 경우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살처분의 위법 여부를 가리는 본안 소송만 진행 중이다.

경찰 조사도 남았다. 지난달 익산시가 유씨 부부를 살처분 명령을 따르지 않은 혐의(가축전염병예방법 위반)로 고발했기 때문이다. 이 법을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선진국에서는 획일적으로 예방적 살처분을 하지 않고 이동 제한이나 금지를 통해 AI 확산을 막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예방적 살처분의 기준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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