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확성기’로 진화한 온라인 커뮤니티

중앙일보

입력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주갤)에 26일 올라온 ‘문재인 토론기술’이란 카드 뉴스가 게시됐다. ‘CASE1.상대방이 팩폭(팩트폭행)할 때-마 고마해’라는 내용이다. 문 후보의 토론 태도를 비꼬는 내용이다. 업로드 2시간 만에 500개 넘는 추천을 받으며 ‘개념글’로 등극했다. “빵 터졌다” 등 동조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시사게시판에 문재인 후보의 포스터를 만들어 올린 글에는 회원들이 “문재인 캠프로 스카웃해야 된다” “소장품이 또 하나 늘었다”는 댓글이 수백개 달렸다. 포스터를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교체하고 인증샷을 찍어 올리며 환영하는 회원들도 있었다.

대선을 2주 앞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처럼 대선 후보들에 대한 지지와 비판의 쌍곡선이 교차하고 있었다. 본지는 대선 후보 TV 토론회가 열린 날(4월 19일, 23일, 25일) 오후 10시부터 24시간 동안 온라인 커뮤니티 3곳의 정치·시사게시판의 주요 게시글 1535건을 분석했다. 분석대상 커뮤니티는 ‘닐슨코리안클릭’의 3월 집계에서 사용자 수가 많은 3곳으로 했다. 이용자 수는 디시인사이드(460만명), 오늘의유머(오유, 238만명), 일간베스트(일베, 178만명) 순이었다. 오유와 일베는 시사·정치게시판을, 디시는 국회청문회 때 주목 받았던 주갤을 활용했다.

오유는 문재인 후보 지지성향을 뚜렷이 나타냈다. 시사게시판 베스트게시물 787건 가운데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의 게시글은 420건(53%)이었다. 반면 주갤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성향보다 ‘안티 문재인’ 성향이 두드러졌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비판글이 193건으로 가장 많았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글은 64건이었다. 일베는 424건의 게시글 가운데 절반이 넘는 214건이 친박 성향의 조원진 후보에 대한 지지글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부당하다는 게시글도 100건이 넘었다.

커뮤니티의 강한 정치 성향은 네티즌들과의 공감대를 이루면서 일종의 ‘이슈 확성기’의 역할을 한다. 월 평균 수백만명이 방문해 2억~5억 페이지뷰를 기록하는 하면서 공론장의 기능을 갖게 된다. 조희정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각 커뮤니티는 실제로 정치적 파급력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구글트렌드 통계에서 주갤과 오유는 대선이 가까워올수록 관심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시간에 따른 커뮤니티별 관심도 변화. 오유와 주갤에 대한 관심도가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관심도가 크게 늘고 있다. [구글트렌드 캡처]

지난 1년간 시간에 따른 커뮤니티별 관심도 변화. 오유와 주갤에 대한 관심도가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관심도가 크게 늘고 있다. [구글트렌드 캡처]

베스트 게시글 대부분은 논란이 되는 이슈를 과감하게 다룬다. 나름의 논리적 근거를 갖추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된 형태를 띄고 있다. 오유에서 지난 24일 추천을 두 번째로 많이 받은 글은 ‘송민순 사건 10줄 요약’이었다. 문재인 후보 측의 방어 논리를 그림파일 한 장에 담아 공유하기 쉽게 만들었다.

주갤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화법을 분석한 카드뉴스 형태의 글이 인기를 끌었다. 전문가들은 커뮤니티가 기존 언론과 시민의 중간자적 기능을 한다고 분석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커뮤니티들이 소문을 재가공·유통하는 역할을 하고있다.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접하는 시민들이 증가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후보들이 직접 인증글까지 남기며 커뮤니티들을 신경쓰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26일 자신의 지지성향이 강한 오유 게시용으로 동영상을 촬영해 올렸다. “오유가 있어 든든하다”는 이 영상은 2000개 넘는 추천수를 기록했다. 문 후보는 지난 대선 때도 오유와 엠엘비파크에 인증을 남긴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은 “문재인 캠프에서 오유와 주갤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있다”며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커뮤니티의 주장이 강할수록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엄청난 파급력이 가짜뉴스 유통에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13일 대선 후보 테마주 관련 가짜뉴스를 주식갤러리 등에 유포한 혐의로 A씨(62)가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커뮤니티의 배타성이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여 신념을 공유·재생산하며 생기는 ‘확증편향’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명언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다보면 신념이 공고화돼 남의 얘기를 듣지 않게 된다. 그 상태로 세월이 많이 흐르면 신념의 부정이 곧 자기부정이 되기 때문에 극복하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 성향이 다른 커뮤니티 간 교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희정 연구원은 “한국 커뮤니티는 결속력은 강한 반면 외부와의 연결성이 약하다. 이를 극복해야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한영익·이현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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