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윤후명의 문인 제자들, 스승 문학인생 40년 기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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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스승의 문학인생 40년을 축하하기 위해 10일 스승작가와 제자작가가 만났다. 왼쪽부터 제자 정승재, 신강현씨, 기념문집에 참여한 화가 임만혁씨, 주인공인 소설가 윤후명씨, 제자 최옥정, 방현희씨.
[사진=최정동 기자]

스승은 …
“종이가 아깝지 않으냐” 호통
띄어쓰기도 꼼꼼히 지적
1988년부터 40여 명 등단시켜

제자들은 …
스승의 소설·시에서
‘사랑 글귀’ 모은 책 드리고
함께 문학 기행하며 보은

흔히 문인은 선생님으로 불린다. 굳이 제자를 두지 않아도 선생님이라고 불린다. 귀한 글귀 하나, 풍진 세상의 밝은 빛 된 적 여러 번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윤후명(60) 씨는 진짜 선생님이다. 초빙교수 자격으로 강단에 서긴 하지만 대학의 정식 교수직을 차고앉은 적은 없다. 그래도 그는 숱한 제자를 거느린 스승이다. 그의 문하를 거쳐 등단한 작가는 물경 40명을 넘는다.

그 제자들이 스승의 문학인생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다. 문집을 발행하고 그림 전시회도 기획했다. 문집 '사랑의 마음, 등불 하나'(랜덤하우스중앙) 증정식이 열린 10일 서울 대학로의 한 식당을 찾았다. 자리는 조촐했지만 화기애애했다. 선생은 내내 흐뭇한 얼굴이었다.

"문단 40년이란 게 나와는 먼 얘기인 줄 알았다. 따지고 보면 문단 40년이란 게 내놓고 자랑할 게 못 되는 일인데, 이렇게 모여주시니 그저 행복하다."

선생이 처음 제자를 받은 건 1988년이다. 경기도 안산 자신의 집에 문하생을 두기 시작했다. 그러다 96년엔 아예 서울 인사동 한 사무실을 빌려 '소설학당'이란 간판을 걸었다. 지금은 작가가 돼 활발하게 활동중인 신장현(59).정승재(47).이평재(47).방현희(41).최옥정(41).류경(38).김이은(34) 등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하나 둘 숫자가 늘어나자 제자들은 2002년 '비단길-서울 문학포럼'이란 이름으로 본격적인 문학동호회 활동을 시작했다. '비단길'은 스승의 대표작 '둔황의 사랑'의 주요 모티브다.

"96년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무조건 원고지 80매짜리 소설을 만들어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겨우 원고지 매수 채워 갔더니 휙 훑어보시더니 '80매 채운 게 대단하다'고 하시더군요." 동호회 회장인 정승재씨의 회고다. "평소 엄하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지난해 소설집 '강남개그'(실천문학사)를 발표해 좋은 평을 들었던 신장현씨가 끼어든다. "언젠가는 대뜸 이러시더라고요. 종이가 아깝지 않으냐?"

작가 윤후명은 문단에서 순수함을 고집하는 마지막 문인으로 통한다. 여전히 술 좋아하고 음란패설 즐긴다. 그러나 제자들 지도엔 꼼꼼하다. 띄어쓰기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단다. 본래 시로 등단한 스승(67년 시로 등단하고 79년 소설로 다시 등단)이었으니 되레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문집은 스승의 글귀를 제자들이 일일이 골라 묶었다. 스승이 발표한 11권의 소설책에서 사랑에 관한 글귀를 발췌했고, 시집 2권에서 사랑 시 31편을 추렸다. 거기에 김원숙(53).임만혁(39) 두 화가의 그림 52점을 얹었다. 임 화가가 "작품에 매달린 7개월은 정말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말하자 윤 작가는 "완성된 그림을 보고 내 글에 이런 부분이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고 화답했다.

제자들은 15~22일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에서 그림 전시회를 열고 3월 11일엔 이틀 여정으로 문학기행도 떠날 계획이다. 팍팍한 세상, 이 정도면 호사라고 불러도 실례는 아니겠다. 윤후명 선생, 복도 많으시다.

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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