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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아베' 놓고 아소·기시다 '정중동' 행보

중앙일보

입력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15일 도쿄 신주쿠공원 벚꽃축제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도쿄 로이터=뉴스1]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15일 도쿄 신주쿠공원 벚꽃축제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도쿄 로이터=뉴스1]

일본 정치권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만 보인다는 이른바 ‘아베 1강'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자민당 내 주요 파벌 간 연대를 모색하는 회합이 늘어나는 등 ‘포스트 아베’를 겨냥한 물밑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아베 정권의 발목을 쥐고 있는 극우 학교재단 모리토모학원 문제와 오는 7월에 치러지는 도쿄도의원 선거의 향배가 ‘아베 조기 실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아베 체제의 균열 원인으로 지목된다.

모리토모학원·도쿄도선거, 아베 정권 난제 #일각에선 '조기 실각' 점치기도… #아소파·기시다파 他 파벌과 물밑 움직임 #아소, 연대론 불지피며 세력 규합 #아소 측근은 모리토모 폭로전 문 열어 #아소 본인도 정책적으로 아베에 반기 #기시다, 파벌 결성 60주년 맞아 결의 다져 #뿌리 같은 아소파·다니가키그룹과 연대론도 #"내년 총재 선거 나가라" 파벌 내 불만도

지난해 7월 당선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도쿄도민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바탕으로 사실상 지역신당인 '도민우선모임'을 만들었다. 오는 7월 도의원선거에서 압승을 예상하고 있다. [도쿄 AP=뉴시스]

지난해 7월 당선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도쿄도민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바탕으로 사실상 지역신당인 '도민우선모임'을 만들었다.오는 7월 도의원선거에서 압승을 예상하고 있다. [도쿄 AP=뉴시스]

당장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할 경우 당내에서 정계 개편 논의 등 거센 후폭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일본 언론은 도쿄 도민의 지지율이 70%가 넘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지사가 주도하는 지역신당 ‘도민우선모임’이 이번 선거에서 선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를 의식한 듯 아베 총리는 지난 11일 도쿄도당 결의대회에 참석해 “급조한 정당이 도정을 이끌 힘은 없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아베에 대한 지지율이 여전히 50~60%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상황은 언제든 역전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1 정도가 ‘지지할 사람이 없어 아베 총리를 지지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민당 내에선 특히 아소 다로(麻生太郎·77) 부총리 겸 재무상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0) 외무상 측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아소 부총리는 2008년 9월부터 1년간 총리를 지냈고, 기시다 외상은 총리 4명을 배출한 명문 파벌 고치카이(宏池会, 일명 기시다파)를 이끌고 있다.
파벌 규모도 엇비슷하다.
기시다파는 46석, 아소파는 44석으로 각각 당내 3, 4위다.
이 때문에 다른 파벌과 제휴해 몸집을 불린 뒤 차기 총재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각 파벌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바덴바덴 AP=뉴시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바덴바덴 AP=뉴시스]

NHK에 따르면 아소 부총리는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전 간사장을 중심으로 한 일명 다니가키그룹의 일부 의원과 18일 밤 모임을 가졌다.
다니가키그룹은 규모가 작지만 멤버 대부분이 각료 경험자로 구성돼 있다.
아소 부총리는 이날 모임에서 “정치 안정을 위해 당내 큰 정책집단 간 절차탁마(切磋琢磨)가 필요하다”며 두 파벌 간 연대론을 폈다.
NHK는 “아소파와 다니가키그룹의 일부 의원, 무파벌 의원 등이 연대해 다음달 새로운 파벌을 세우기 위해 세부 조율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와 별도로 아소파는 산토 아키코(山東昭子) 전 참의원 부의장이 이끄는 산토파(12석)와의 연대도 모색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당내 최대 세력인 호소다파(99석)에 필적할 정도로 세력을 확장하는 게 아소파의 목표다.

◇ 자민당 주요 파벌 (2017년 4월 현재)

파벌명
(통칭)  

영수  

의석 수
(중·참의원 합계)  

  호소다파  

호소다 히로유키
당총무회장  

  99  

  누카가파  

누카가 후쿠시로
전 재무상  

  55  

  기시다파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46  

  아소파  

아소 다로
부총리·재무상  

  44  

  니카이파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  

  41  

  이시바파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  

  20  

  이시하라파  

이시하라 노부테루
경제재생담당상  

  14  

  산토파  

산토 아키코
전 참의원 부의장  

  12  

70대 후반인 아소 부총리는 당초 전면에 나서지 않고 킹메이커 역할을 자처했다.
자신이 총리를 지낸 직후 야당인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는 원죄도 한몫 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모리토모학원에 국유지를 헐값 불하한 사건에 깊숙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아소파의 행동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소파 중진인 고노이케 요시타다(鴻池祥肇) 전 방재담당상은 지난달 1일 기자회견을 열고 “모리토모학원의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이사장이 찾아와 민원을 제기하며 현금을 건네려고 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발언은 야당이 아베 정권을 추궁하는 기폭제가 됐다.
아소 본인이 정책 판단에서 아베 총리와 선을 긋는 모습도 나왔다.
무상교육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아베 총리의 재가로 추진되던 ‘교육국채’를 대놓고 반대한 것이다.
아소 총리는 “다음 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적자국채에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당내 소장파들이 제시한 사회보험료 인상을 통한 재원 마련안에 힘을 실어줬다.

포스트 아베 후보로 거론되던 기시다 외상도 최근 들어 보폭을 넓히고 있다.
기시다는 19일 고치카이 결성 60주년 기념파티에서 “아베 총리의 시대도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 아베 시대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지금부터 생각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동영상)"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파티에 참석한 아베 총리는 "(포스트 아베 얘기는) 당분간 참아줬으면 좋겠다"고 뼈 있는 농을 던지기도 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은 전했다.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전 총리가 물러난 1993년 이후 24년간 총리를 배출하지 못한 고치카이 내에선 기시다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기시다는 그간 파벌 모임에서 “여러 파벌과 여러 레벨에서 교류하고 싶다”는 말도 꺼냈다.
실제로 기시다파 소속 의원들이 자민당 2대 파벌인 누카가파(55석)나 7대 파벌 이시하라파(14석) 의원들과 자주 회합하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됐다.

일각에선 기시다파가 아소파·다니가키그룹과 연대할 가능성도 점친다.
사실 세 그룹은 본류가 같다.
1957년 이케다 하아토(池田勇人) 전 총리가 만든 고치카이에서 분열된 파벌들이다.
그러나 이 경우 기시다가 총재 후보로 나설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다.
아사히는 “기시다 외상은 아베 총리와 싸우면서까지 정권을 차지하고 싶다는 의욕이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파벌 내에서도 “존재감이 없다. 정말 총리를 바라본다면 내년 9월 총재 선거에 나가야만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 같은 비판에 직면한 기시다가 조만간 결단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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