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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아이들이 힘들다"…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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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다.’ 누군가에게는 구문(舊文)으로 느껴질 이 말이 이제훈(77)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에게는 매일 새롭다. 7년 간 어린이들을 위한 재단 회장직을 맡아온 그의 최대 임무이자 소신이기 때문이다. 늘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을 어떻게 키워 나가야 할까’라고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

자연스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고민도 어린이를 향해 있다. 대통령 선거의 해를 맞은 올해 1월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만 18세 미만 아동 8600여 명에게서 1만1300여 건의 정책 제안을 받았다. 선거권이 없어 자신들을 둘러싼 문제에서 소외되기 쉬운 아동들을 위한 캠페인이다. 이 회장과 재단의 소망이 ‘미래에서 온 투표’라는 캠페인 이름에 담겼다.

아이들은 ‘공부 시간이 너무 많아 힘들다’ ,  ‘범죄 없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 등의 의견을 냈다. 분야별로 정리해 보고서로 만들어 대선 주자들의 캠프에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직접 쓴 제안을 보니 경제적 환경은 더 나아졌을지 몰라도 정서적 환경은 훨씬 나빠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환경이 어떻게 나빠지고 있는가.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 스스로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좀 더 좋은 학교, 높은 성적을 위해 아이들에게 ‘규격화’ 된 삶을 강조하는 부모의 욕심이 스트레스를 키웠다. 놀 시간도 부족하고 무엇이 하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도 부족하다. 세상은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는데 아이들이 처한 환경은 그렇지가 않다. 여기에 가족 관계 해체 현상이 심각해져 가정에서 받아야 할 인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인성교육을 늘 강조해왔는데.

"타인과 함께 사는 세상에서는 내가 존중받는만큼 다른 사람도 존중해야 한다. 옛날에는 조부모·부모·형제 다 모여 살며 자연스럽게 ‘밥상머리 교육’이 됐는데 요새는 그게 안 된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인성교육은 배려와 사회성,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부모·선생님에게 ‘감사편지 쓰기’ 캠페인을 한 것도 그 일환이다."

올해 역점 사업은.

"정책 제안 등 아동 환경 개선을 위한 애드보커시(Advocacy·이념에 대한 지지) 활동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전국에 아동옹호센터 총 7곳을 개소해 운영하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인재 양성 프로그램, 해외 아동 지원사업 비중 또한 점차 넓혀갈 생각이다."

기자 출신으로 신문사 사장과 한국신문협회 부회장 등을 지낸 이 회장은 은퇴하면서 “남은 인생은 사회를 위한 활동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0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을 맡게 되면서부터 재단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업을 아동 지원 위주로 개편하고 연구소를 만들어 어린이재단만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확립했다. 그 사이 후원자 수는 4배 가까이로 늘었다.

회장직을 맡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수많은 후원자들의 사연과 그 후원을 받고 훌륭히 성장한 어린이들을 볼 때 가장 보람이 있다. 특히 지난해 리우 올림픽 때 재단이 후원한 박상영(22) 펜싱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박 선수가 그해 9월 후원자 행사 때 3000명 가까운 관중들 앞에서 '감사하다'며 내게 금메달을 걸어줬다. 바로 돌려주긴 했지만 정말 감격스러웠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올해가 창립 69주년이다. 그동안 참 많은 NPO(비영리단체)들이 생겨났고 한국의 기부 문화도 많이 발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시민들은 NPO의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후원자 개발은 대부분의 NPO에서 정체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NPO들은 각자의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 어린이재단의 신조는 늘 한결같다. 모든 아동 이슈에 대해 아이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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