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근혜의 '592억 뇌물'…기업-권력 관계 달라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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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4월 17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긴 날인 동시에 그의 후임을 뽑는 대선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날이었다. 권력의 부침이 교차하는 묘한 뉘앙스를 남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起訴)는 수사 결과에 대해 법원의 심판을 구하는 행위로 처벌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는 뜻이다. 온 국민에게 ‘이게 나라냐’는 한탄과 분노, 배신감과 좌절감을 안긴 박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피고인 박근혜'의 전철을 밟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의 범죄 사실 중 가장 눈에 띄는 혐의는 뇌물 부분이다. 검찰은 삼성의 433억원 외에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낸 70억원, SK에 추가로 지원하라고 요구한 89억원 등 모두 592억원을 뇌물에 포함시켰다. 실제로 오간 돈은 물론이고 약속이나 요구에도 뇌물죄를 적용한 것이다. 앞으로 이권을 둘러싼 대기업과 권력의 물밑 거래를 차단하려면 미리 강력한 주문으로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제 대기업들도 권력만을 탓할 게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과감하게 바로잡고, 권력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통령 기소를 끝으로 ‘국정 농단 수사’는 일단락됐다. 그 실체가 어느 정도 수면 위로 드러났고, 농단 세력들을 단죄하는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부실 수사는 면죄부만 줬다는 비판과 함께 검찰 수사의 오점으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부패 혐의로 기소된 세 번째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남겼다. 공을 넘겨받은 법원은 기소 내용뿐 아니라 세월호 7시간의 행적 등 온갖 의혹과 국민의 궁금증을 풀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재판에 임해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도 의혹과 진실을 밝히는 역사적 재판이 되도록 자발적으로 나서 치열한 공방을 벌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