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차 볼트, 디자인·핵심부품은 ‘메이드 인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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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전기차 ‘볼트(BOLT)EV’는 미국차다. 미국 자동차 ‘빅3’ 중 제일 큰 제너럴모터스(GM)의 이름표를 달고 있다. 태어난 곳도 미국 미시간주의 오리온 공장이다. 그러나 볼트EV에선 한국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한국GM에 따르면 볼트EV에 부품을 공급한 한국 업체는 40여 곳. 한국GM 관계자들은 “볼트의 핵심 부품 공급과 디자인 작업에 한국 업체와 인력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전체 부품 수만개 중 많은 수는 아니지만 핵심 부품에 ‘메이드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많이 쓰였다는 것이다.

배터리 공급 LG화학이 일등공신 #LG전자, 심장인 모터 외 11종 공급 #램프·휠 등 40여 업체가 탄생 도와 #겉모습은 100% 한국디자이너 작품

볼트EV는 지난 2015년 북미 국제오토쇼에서 처음 공개됐다. 당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볼트(Volt)와 달리 순수전기차인데도 1회 충전으로 321㎞ 이상 운행할 수 있는 데다 3000만원 대에 판매된다는 계획이 발표되며 ‘전기차 대중화’를 실현할 차로 기대를 모았다. 이달 말 출시 예정인데 지난달 사전예약에서 이미 초도물량 400대가 완판됐다.

볼트EV가 내세우는 포인트는 ‘충전 걱정을 완화한 순수전기차’다. 한국GM은 “1회 충전에 383㎞를 주행할 수 있어 충전 없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고효율 모터와 배터리 시스템 등을 갖춰 가능한 일이다. 구동축에 동력을 제공하는 모터는 기존 화석 연료 자동차의 엔진과 같은, 전기차의 심장이다.

이 모터를 만든 것이 한국의 LG전자다. 볼트EV는 속도를 줄이거나 멈출 때 분산되는 모터의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해, 배터리를 재충전함으로써 긴 주행거리를 확보한다. 동시에 고성능 모터로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 최고 출력 204마력의 주행 성능을 끌어낸다. GM은 이처럼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모터의 효율을 높이는 LG전자의 기술력을 인정해 볼트EV의 모터 제조를 맡겼다.

LG전자는 이 외에도 ‘인버터’(직류 전기를 교류로 변환하고 모터를 제어하는 장치) 등 11종의 부품을 공급했다. 모두 볼트EV의 핵심을 이루는 부품들이다. 계기판과 디스플레이 같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공조시스템 등도 LG전자의 솜씨다.

볼트EV 탄생의 또다른 일등공신을 뽑으라면 LG화학이다. 이 회사는 전기자동차의 주행 거리를 결정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공급했다. LS전선도 LG전자를 통해 구동모터에 코일 형태로 감아 전기에너지를 기계에너지로 변환하는 권선을 납품했다. 구동 모터가 심장이라면 권선은 혈관과 같은 부품이다.

국내 중견 자동차 부품 업체들도 구동이나 디자인과 관련한 다양한 부품을 공급하며 큰 역할을 했다. 볼트EV의 카탈로그에는 ‘실버에 블랙을 음각시킨 독특한 디자인의 17인치 투톤 알로이 휠로 스포티하고 세련된 감각을 부여했고, 선명하고 또렷한 HID 헤드램프와 LED가 장착된 시그니처 주간 주행등으로 스타일을 완성했다’고 적혀 있다. 카탈로그에 언급된 휠을 핸즈코퍼레이션이, 램프를 SL서봉이 공급했다.

전기자동차의 동력을 바퀴에 전달하는 부품인 하프샤프트와 콘트롤암은 각각 이래오토모티브와 센트랄에서 만들었다. 이외에도 사이드 미러 같은 유리 제품을 SMR에서 만들었고, 카메라 레이더를 고정하는 부품인 어플리케의 제작은 신진화학이 맡았다. 정면에서 보이는 라디에이터 그릴은 삼신화학공업이, 위에서 보이는 루프렉은 이든텍이 납품했다.

이들 업체 중 이래오토모티브와 신진화학은 GM이 선정한 ‘우수 협력사’이기도 하다. GM 우수 협력사로 선정된 한국 부품 업체는 2005년 5개사에서 지난해 27개사로 늘었다. 미국을 제외하고 지난 9년 동안 매년 가장 많은 우수 협력사를 배출한 국가가 한국이다.

한국GM 관계자는 “전기차를 움직이는 드라이브 유닛(구동시스템)부터 외형적으로 눈에 띄는 휠·램프·사이드 미러, 그리고 운전자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인포테인먼트와 공조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볼트EV의 핵심 요소 곳곳에 한국 부품 업체의 기술력이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와 현재가 공존하는 디자인’이라고 내세우는 볼트EV의 디자인도 한국 디자이너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한국GM 디자인센터가 개발 초기단계부터 디자인 작업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한국 디자인센터는 GM의 전세계 디자인센터 중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 스파크와 트랙스의 디자인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한국GM 디자인센터의 조상연 상무는 “볼트EV의 외관은 100% 한국GM 디자이너들의 작품”이라며 “한국GM이 소형차를 만드는 노하우를 많이 갖고 있고, 글로벌에서도 이런 강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볼트EV의 핵심부품과 디자인을 구축한 경험은 다른 글로벌 업체와 관계를 구축하는데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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