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제성 없다’ 결론난 8조원 철도 … 12개 지자체, 대선 틈타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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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맞아 지방자치단체가 각 후보 캠프를 향해 쏟아내고 있는 철도·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요구안에 대해 정부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투자 대비 효용가치가 적다는 것이다. 8조5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한 동서내륙철도가 대표적이다. 충남 서산에서 경북 울진까지 340㎞를 잇는 이 철도는 해당 노선이 지나가는 12개 지자체가 강력하게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수립한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16~2025년)에서 동서내륙철도는 제외됐다.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은 지자체, 국책연구기관과 협의해 발표하는 향후 10년 동안의 계획이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국토부 권혁진 철도정책과장은 “해당 노선은 현재 국도도 한산할 정도로 교통 수요가 적은 곳이어서 아직 철도가 필요한 단계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전라고속철, 여수~남해 해저터널 #대선 공약에 넣어달라 줄 이어 #복지 등 나랏돈 들어갈 곳 많은데 #SOC사업 남발 땐 재정에 큰 부담

5조7700억원의 사업비가 예상되는 전라선(익산~여수) 고속철도 건설 사업과 여수~남해 동서해저터널 건설 등도 3차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해당 노선의 수혜가 예상되는 지자체들은 대선 공약에 넣어달라고 계속 요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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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3차 계획에 포함돼 있더라도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결과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추진이 어렵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실제로 김천~거제 남부내륙철도는 2014년 1월 예타에 들어갔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남부내륙철도, 평택~오송 고속철도 등의 사업은 3차 계획에 잡혀 있고 조기 추진이 필요하다고 평가받는 국가 철도망 사업에 속하나 경제성 문제 등에 발목이 잡혀 차질을 빚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 후보들 SOC공약 나오면 점검키로

이미 예타 결과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대선을 맞아 지자체가 다시 요구하고 나선 사업들도 있다. 인천시가 대선 캠프에 요구하고 있는 서울도시철도 7호선의 인천 청라 연장 사업의 경우 2012년에 이미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고 판명됐다. 이후 유사한 조사가 이어졌지만 결과가 바뀔 만큼 사정이 달라질 게 없는 상황이다.

한국교통연구원 최진석 철도교통본부장은 “철도는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인 데다 철도 건설 공약 자체로도 해당 지역 부동산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추진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공약으로 채택됐다고 하더라도 실제 추진이 지지부진할 경우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도로도 마찬가지다. 기재부 오상우 국토예산과장은 “대선 등 선거철마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도로 건설 요구가 쏟아져 나온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앞으로 SOC 관련 예산을 연평균 6%가량 줄여나갈 방침이어서 철도·도로 건설 등 큰돈이 드는 사업을 추진하는 데 좀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저출산·고령화 여파 등에 따른 복지예산 증가 등으로 나랏돈이 쓰일 곳은 많은데 재정 사정은 여의치 않아서다.

현재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40%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OC 관련 사업을 남발한다면 재정을 관리해야 하는 예산 당국 입장에선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오상우 과장은 “설령 대선 공약에 들어간다고 해도 경제성이 크게 떨어지는 사업이라면 실제 집행할 수는 없다”며 “다만 한정된 자원에서 최대한 공약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각 대선 캠프의 SOC 공약이 나오면 해당 사항들에 대해 면밀히 점검키로 했다.

함종선 기자, 세종=하남현 기자 j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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