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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천둥응원 잠재운 ‘정미 손’ … 요르단서도 걱정말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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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정미는 북한전에서 페널티킥을 막아내면서 아시안컵 본선행을 이끌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정미는 북한전에서 페널티킥을 막아내면서 아시안컵 본선행을 이끌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어디로 찰래? 왼쪽으로 찰 거지?”

14년간 여자축구대표팀 수문장 #북한 선수 페널티킥 수퍼세이브 #콧등 멍들어도 승리 위해 몸 던져 #30대 중반이지만 대체불가 1순위 #“아시안컵 넘어 월드컵 꼭 나갈 것”

무심한 듯, 한 마디를 툭 던지고 돌아섰다. 페널티킥 키커로 마주 선 북한 골잡이 위정심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살짝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수퍼세이브. 지난 7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여자아시안컵 예선 B조 한국-북한전의 한 장면이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5만 관중의 함성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공만 응시했고, 몸을 던져 막아냈다. 110번째 A매치를 치른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골키퍼 김정미(33·현대제철)는 경험과 자신감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전반 5분 실점 위기를 넘긴 한국은 이후 북한의 파상공세를 잘 견뎠다. 한 골씩 주고 받은 끝에 1-1로 경기를 마쳤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한국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고 환호했다. 북한 선수들은 고개를 떨궜다. 평양에서 열린 여자축구 첫 남북대결은 한국의 승리 같은 무승부로 끝났다.

13일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만난 김정미는 “전반 시작하자마자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해 당황했다”고 페널티킥 상황을 회상했다. 이어 “위정심이 이전 경기 페널티킥 찬스에서 왼쪽으로 찬 걸 알고 있었다. 혼란을 주고 싶어 내 나름 심리전을 시도한 것”이라며 “페널티킥을 막아낸 뒤 상대 선수와 부딪쳐 그라운드에 쓰러졌는데, 동료들이 달려와 북한 선수들과 거칠게 기싸움을 벌였다. 그 상황은 나중에 알았는데, 든든하고 흐뭇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콧등에 시퍼런 멍이 들 정도였지만, 고통을 참고 끝까지 골문을 지켰다.

김정미는 30대 중반의 노장이지만 여자대표팀에서 ‘대체 불가 1순위’다. 2003년 A매치 데뷔 이후 14년간 110경기에 출전했다. 국내 여자선수 중 최다 출장 1위다. 2003년과 2015년, 한국이 출전한 두 차례 여자월드컵 본선에 모두 나간 유일한 선수다.

김정미는 대표팀 최후방을 지키는 든든한 수문장이다. 그는 한국 여자 선수로는 역대 두 번째로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에 가입했다. [중앙포토]

김정미는 대표팀 최후방을 지키는 든든한 수문장이다. 그는 한국 여자 선수로는 역대 두 번째로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에 가입했다. [중앙포토]

2013년 부임한 뒤 세대 교체부터 시작한 윤덕여(56) 여자대표팀 감독도 골키퍼 포지션은 변화를 주지 않았다. 실력과 경험, 투지,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경쟁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미는 “10년 넘게 서로 돕고 경쟁하던 (전)민경(32·이천대교 코치)이가 2015년 대표팀에서 은퇴했을 때 슬펐다”면서 “후배들이 원하면 노하우를 아낌 없이 알려준다. 그래야 경쟁할 수 있고, 경쟁이야말로 성장의 원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여자아시안컵 예선에서 조 1위로 본선에 올랐다. 내년 요르단 본선에서 참가 8개국 중 5위 안에 들면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 본선 출전권도 거머쥔다. 김정미는 “월드컵 본선을 세 번이나 경험할 기회가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면서 “늘 목표를 크게 갖는 편이다. 후배들과 재미있게 경쟁하면서 잘 준비해 2년 뒤 월드컵 무대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김정미는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 당시 ‘투혼의 아이콘’으로 주목 받았다. 프랑스와 16강전(한국 0-3패)에서 전반에만 두 차례 크게 부딪혔지만 다시 일어섰다. 부어오른 광대뼈를 붕대로 덮은 뒤 풀타임을 소화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홈페이지에 올린 ‘용감한 정미(Brave Jungmi)’라는 글에서 ‘한국이 3골을 내줬는데, 김정미의 투혼 넘치는 수퍼세이브가 없었다면 더 큰 점수차로 무너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윤덕여 감독은 “(김)정미는 동료들에게 늘 긍정적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선수”라며 “한국 여자축구 유망주들이 역할 모델로 삼아도 손색이 없다”고 칭찬했다.

김정미는 …

· 생년 : 1984년 10월16일 

· 신체 : 1m78㎝
· 포지션 : 골키퍼
· 소속팀 : 현대제철

대표팀 기록(110경기 149실점)


· 2014 인천아시안게임 동메달
·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 16강

김포공항=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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