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태광의미생물이야기

스키장에서 눈을 만드는 미생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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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생물 얼음 핵은 가을에 서리가 내려 농작물이 냉해를 입는 원인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적어도 영하 5도까지는 얼음이 얼지 않기 때문에 식물체가 냉해를 입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영하 2~3도의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식물체에 얼음이 생겨 동상을 입은 것이다. 왜 이런 온도에서 식물 잎에 얼음이 생기는지를 초기에는 알지 못했다. 추적 결과 찾아낸 것이 식물 잎에 살고 있는 슈도모나스란 미생물이다. 이 미생물의 껍질 단백질이 얼음을 쉽게 만드는 데 필요한 얼음 핵을 제공해 식물체에 얼음을 만든 것이다. 얼음 핵 단백질의 유전자 순서도 밝혀져 이제는 미생물을 이용해 값싸게 양산할 수 있다. 심지어 열대지방에서도 실내스키장이 생기는 것은 이런 미생물 유전자 기술의 개가다.

다른 한편에선 식물체의 냉해를 막기 위한 연구도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미생물 유전자 조작을 통해 얼음 핵 단백질을 없애버린 신미생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미생물을 식물체에 뿌렸더니 놀랍게도 영하 10도에서도 얼음이 생기지 않아 식물이 냉해를 입지 않았다. 과연 무엇이 냉해를 입지 않게 만들었을까? 얼음 핵이 없는 신미생물이 원래 식물에 살던 미생물과 경쟁해 얼음 핵이 있는 미생물을 살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되자 훨씬 낮은 온도에서도 식물체에는 얼음이 얼지 않았고, 냉해도 피할 수 있었다. 눈을 만드는 것 외에 인공으로 비를 뿌리는데도 미생물 얼음 핵 단백질이 사용되기도 한다. 얼음을 쉽게 만들 수만 있다면 얼음과자를 비롯해 냉동 관련 제품을 값싸고 안전하게 생산할 수 있는 큰 장점을 가진다. 다만 미생물 껍질 단백질을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값싸게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눈에 보이지도 않은 미생물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천문학적인 숫자가 갖는 미생물의 힘이다. 아무리 힘들고 많은 일이라도 미생물의 엄청난 숫자가 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한다.

하나만 덧붙이자. 미생물이 아주 작으니까 미생물 관련 공장도 아주 작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적어도 10층 높이의 아파트만 한 미생물 배양기가 여러 대 돌아가는 공장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겨울철 신나게 즐기는 스키가 미생물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미생물학자에게는 큰 보람이 될 것이다.

오태광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미생물유전체 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