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3600개의 '꿈'과 7만4000개의 ‘좌절’…빅데이터로 분석한 업종·지역·세대별 창업 기상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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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수입차 딜러 김상문(37)씨는 지난 2월 서울 종로구에 피트니스클럽(헬스장)을 오픈했다. 지난 9년간 애지중지 모아온 2억8000여만원을 쏟아부은 ‘올인(All-in)형 창업’이었다. 김씨는 “40대가 되기 전에 오랫동안 꿈꿨던 일에 도전하고 싶었다. 10년 넘게 헬스를 취미로 하고 있고, 또 최근 들어 ‘피트니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피 튀기는 헬스장·마사지샵·카페 창업 #창업하기 좋은 종로구·중구 #위기의 40대 자영업자…“창업 조심하세요”

아내의 만류에도 야심차게 창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김씨는 벌써 후회중이다. 근처 직장인들을 ‘메인 타깃’으로 삼았지만 오픈한 지 두 달간 모집한 회원은 채 100명도 안 됐다. 반경 1km 안에서 이미 4개의 피트니스 클럽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다. 또 운동에 관심 있는 대다수 직장인들은 ‘사내 피트니스 클럽’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씨는 “막상 창업을 해보니 생각처럼 되는게 하나도 없다. 이미 3억원에 가까운 매몰비용이 발생했는데 임대료 압박은 심하고 회원수는 제자리걸음이라 앞이 보이질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에선 매년 7만명 이상이 김씨처럼 ‘성공한 자영업자’의 꿈을 품고 창업의 세계에 발을 디딘다. 취업이 쉽지 않은 청년들,  직장에서 나온 중장년들이 창업 전선에 뛰어든 결과다. 신한카드 트렌드연구소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 새로 문을 연 가게는 7만3660개(상위 30개 업종 기준·십단위 반올림)에 달한다. 창업비중이 가장 높은 업종은 단연 음식점이었다. 지난해 서울에 생긴 음식점은 총 2만1020개로 전체 창업한 가게의 28.5%를 차지했다. 옷가게 등 패션관련 점포(5170개)와 학원(4490개), 카페(2380) 등이 뒤를 이었고 피트니스센터도 총 1450개가 새로 문을 열었다.


‘창업 열풍’의 이면엔 대규모 폐업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씨의 경우처럼 임대료와 인건비 등 높은 고정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창업전선에서 패배하고 문을 닫은 가게는 서울에만 총 7만4080개에 달했다. 지난해 서울에선 7만개가 넘는 가게가 시끌벅적하게 문을 여는 동안 그보다 많은 가게가 소리없이 문을 닫은 셈이다.

신용카드 사용을 통해 본 서울에서의 창업·폐업 통계를 따져보면 상대적으로 ^쉽게 망하는 업종^장사가 잘 안되는 지역^폐업 확률이 높은 자영업자 연령대 등이 나타난다. 서울에서 자영업에 뛰어 들려는 계획을 짜는 예비 사업자들이 참고할 만 하다.

◇헬스장·마사지샵·카페 절반 이상 3년 안에 망해=최근 건강과 자기관리에 관심이 높은 ‘트렌드’를 반영해 서울에서 헬스장과 마사지샵 창업이 급증하고 있지만 그만큼 쉽게 폐업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창업 후 채 3년도 안돼 망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업종은 헬스장이었다. 지난해에 서울에서만 950개의 헬스장이 문을 닫았고, 3년 이내에 폐업하는 비율도 69.3%에 달했다. 지역에 관계없이 우후죽순 헬스장이 문을 열고 있지만 10곳 중 7곳은 3년 안에 망한다는 의미다.

마사지샵 또한 3년 이내 폐업하는 비율이 65.6%에 달했다. 지난해 폐업한 마사지샵은 총 520개였고, 이 중 340개는 문을 연 지 3년도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 3년 이내 폐업하는 비율이 높은 업종으로는 헬스장과 마사지샵에 이어 카페(63.1%), 음식점(62.4%), 미용(61.7%) 등이 있었다.

반면에 보육시설은 한 번 차리면 5년 이상 영업을 하는 비율이 57.4%나 됐다. 인테리어업도 5년 이상 망하지 않고 영업하는 비율이 49.9%가 됐다.

◇강서구는 ‘조기폐업’ 중구는 ‘롱런’=서울에서 ‘조기폐업’하는 가게가 가장 많은 곳은 강서구였다. 3년 이내 폐업률이 58.1%에 달했다. 다음으로 3년 이내 폐업율이 높은 지역은 마포구(56.9%), 관악구(56.7%) 등이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그만큼 자영업 경쟁이 치열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25개 구 가운데 조기폐업하는 가게가 가장 적은 곳은 중구였다. 중구의 3년 이내 폐업률은 42.7%로 평균(52.9%)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았다.

창업 후 가게가 5년 이상 유지되는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도 중구였다. 그 비율은 42.2%로 25개 구 평균(29.8%)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신한카드 빅데이터팀은 이같은 결과에 대해 “오피스 타운이 조성돼 있어 기본적인 수요가 보장되고, 최근 구상권에서 신상권으로 변화하는 과도기라는 점 때문에 창업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분석했다.

중구에 이어 5년 이상 ‘롱런’하는 가게가 많은 곳으로는 종로구(38.9%), 동작구(32.6%), 용산구(32.1%) 순이었다. 강서구는 3년 이내 폐업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면서 동시에 5년 이상 운영되는 가게의 비율이 25.5%로 가장 낮아 창업 후 오랜 기간 살아남기 가장 어려운 지역으로 꼽혔다.

◇40대가 창업 많이 하고, 20대는 3년 안 폐업 비율 높아=세대별로는 40대의 창업률이 30.4%로 가장 높았다. 과거 60대 이상의 은퇴자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수동적 창업’에 그쳤던 것과 달리 최근엔 40대부터 자기 사업을 꿈꾸며 ‘능동적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탓이다. 실제 지난해 40대가 창업한 가게는 2만2430개에 달하는 반면 60대 이상은 5940개에 불과했다.

창업한 지 3년 안에 폐업하는 비율은 20대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 20대가 운영하는 가게 중 문을 닫은 곳은  4290개였다. 이 중 창업한 지 3년 안에 망한 가게는 3280개로 76.4%에 달했다.

이 비율이 30대는 65,5%, 40대는 53.1%, 50대는 46.7%, 60대는 37%였다. 취업전선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창업 도전하는 20대가 늘면서 빨리 폐업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청년들이 꼼꼼히 준비하지 않고 자영업 창업에 뛰어든 결과다.

곽종빈 서울시 소상공인지원과장은 “창업 10계명 중 하나가 ‘창업하려는 열정으로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최대한 버텨라’라는 문구”라며 “창업 전 최소 6개월 이상의 준비기간이 필요하고 창업 전 주변 상권과 수요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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