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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색계’에 스러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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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쫓겨난 중국에서 요즘 드라마 한 편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제목은 '인민의 이름으로(人民的名義).' 대륙 사상 최대 반부패 드라마라고 합니다. 지난 3월 28일부터 후난(湖南) 위성 TV를 통해 방영을 시작했는데 아이치이(愛奇藝·iQIYI) 등 동영상 사이트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지요.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젊은이들 사이에선 이 드라마를 보지 않고는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하네요.  

'인민의 이름으로' 홍보 포스터 [사진 홍콩성도일보]

'인민의 이름으로' 홍보 포스터 [사진 홍콩성도일보]

중국 정치소설가 저우메이선(周梅森)이 대본을 썼는데 한 검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부총리급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파헤쳐 처벌한다는 내용입니다. 정경유착, 권력과 여색(女色), 폭력배를 동원한 철거, 노동자들의 항거 등 말초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권력 부패의 이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권력 막후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기심에 말초 신경까지 자극하고 있으니 인기를 안 끄는 게 더 이상할 것 같습니다. 컨셉은 좀 다르지만 거의 '색계(色戒)급' 전율이 있는 드라마입니다.

대륙 사상 최대 반부패 드라마 인기 #한 검사가 부정부패를 파헤치는 내용 #공산당 방송 금기였던, ‘부패와 권색’ #시진핑 반부패 정책 추진 이후 달라진 풍경 #한류(韓流)가 쫓겨난 대륙, 한류(漢流) 부나

의문이 듭니다. 부패와 권색(權色·권력과 여색)은 중국 권력의 아킬레스건인데 시진핑 주석은 왜 이 시점에 스스로의 치부를 까발리도록 놔두는 걸까요? 중국 광전총국(영화 드라마 등을 총괄하는 부서)은 2004년 "부패나 공안을 소재로 한 TV 드라마는 황금시간대에 방송할 수 없다"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후 지난 10여 년간 부패 드라마는 자취를 감췄지요.

영화 색계의 한 장면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 색계의 한 장면 [사진 네이버 영화]

한데 지난 2012년 제18차 중국 공산당 전국 대표 대회(18대)를 통해 권력을 잡은 시진핑 주석이 사상 최대 반부패 사정 작업에 나서면서 사정이 좀 달라졌습니다.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직접 나서 광전총국에 "문예작품은 민심을 수렴해야 하며 반부패 투쟁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문을 한 겁니다. '인민의 이름으로'가  중국 검찰의 드라마 제작 기관인 최고 인민검찰원 드라마센터가  주도한 이유입니다. 중앙 군사 위 진둔(金盾) 드라마센터까지 후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시 주석의 반부패 투쟁으로 지금까지 수백 명의 호랑이(고위직 관료)들이 쇠고랑을 찼는데 이들의 부패 행각을 인민들에게 알려 민심과 부패 척결의 정당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겁니다. 물론 시진핑 권력에 콘크리트를 치는 덤(?)도 염두에 뒀겠지요.

또다시 드는 의문 하나. 부패는 그렇다 치고 어떻게 도색 잡지를 방불케하는 권력과 여색의 잔혹사(?)까지 드라마 소재로 활용할 생각을 했을까요? 여기에도 심산이 있어 보입니다. 그동안 중국에서는 돈 있고 백 있는 인사들의 여자관계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진 자의 '바오양(包養·첩을 두는 일)'문화가 적대보다는 부러움(?)의 대상이 됐지요. 중국인 특유의 실용적인 가치관에 간통법이 없는 법적 시스템까지 어우러져 만들어진 사회 현상이지요.

바오양 관계를 맺는 합의서.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서로 만난다는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사진 바이두]

바오양 관계를 맺는 합의서.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서로 만난다는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사진 바이두]

그러나 이런 남녀불륜지사(男女不倫之事)도 시 주석이 주도한 공무원 윤리 규정인 '8항 규정'이 만들어지면서 처벌을 받게 됐습니다. 권력의 바람기(?)를 정색하고 처벌할 순 없지만 윤리 규정으로 묶어 철퇴를 가한 거죠. 물론 이런 문화가 규정 하나로 없어지진 않지요. 실제로 지난 4년간 8항 규정 위반으로 처벌된 공무원이 무려 10만여 명에 달합니다.  

'바오양' 문화에 대한 실례는 차고 넘치지요. 2014년 부패 혐의로 실각한 저우융캉 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예를볼까요. 그는 재임 기간 중 최소 29명의 여성을 첩으로 뒀고 400여 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고 합니다(조사로 밝혀진 것만 그렇습니다). 대부분 유명 연예인과 방송 아나운서, 모델들이었습니다. 미녀 아나운서와 결혼을 위해 조강지처를 살해했다는 의혹까지 받았지요.

시진핑 주석의 가장 강력한 권력 라이벌이었던 보시라이 전 충칭(重慶) 시 서기는 법정에서 부인 몰래 애인이 있었다고 자백할 정도였습니다. 그 역시 수십 명의 애첩을 뒀지요. 시 주석 취임 이후 비리로 낙마한 공직자 90% 이상이 여자관계가 있었다고 하니 그들의 여성 편력은 가히 기네스 기록입니다.

부패 등 혐의로 재판 받은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 [사진 CCTV]

부패 등 혐의로 재판 받은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 [사진 CCTV]

여하튼 시진핑 주석은 부패 척결에 관한 한 '돌격 앞으로'입니다. 그게 뇌물이든, 여자 문제든 가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권력에 대못을 박으려면 민초들의 말초 신경까지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거지요. 정경유착, 권력과 여색의 동맹은 국가를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여기에 민초들의 분노를 섞으면 권력의 자양분과 동력, 그리고 정당성이 길러지는 법입니다. 후싱더우(胡星斗) 베이징이공대 교수의 말이 함축적입니다.

부패 드라마 제작은 이번 정부가 인민들에게 반부패 의식을 심어주고 현대 반부패 제도 건립의 기대감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한류(韓流)가 쫓겨난 대륙에 한류(漢流)가 부흥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이런 걸 두고 일거양득이라고 하지요. 권력도 다지고 한류도 쫓아내고...그래서 '색계'는 무섭습니다.

차이나랩 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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