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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J노믹스’ … 정부 주도 성장 추진, 재원 마련이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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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2일 여의도 당사에서 경제정책 구상을 담은 ‘제이(J)노믹스’를 발표했다.

경제공약 5년 전과 비교해 보니 #경제민주화 빠지고 성장 강조 #“재정 증가폭 3.5% → 7%로 늘려 #매년 50만 개 새 일자리 만들 것” #재정충당책엔 법인세 실효세율 조정 #세수 자연증가 연간 10조원 꼽아

자신의 이름(재인)에서 따온 J노믹스의 핵심은 재정 확대다. 정부지출 증가율을 현재 연평균 3.5%에서 7%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그는 “당선되면 즉시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돌입하겠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기업에 투자해 낙수효과를 기대했던 관행에서 탈피해 먼저 사람에게 투자해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살리는 경제성장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적극적인 국가 재정의 역할을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과 교육·보육 등 10대 핵심 분야를 집중 투자 대상으로 꼽았다. 이를 통해 “연평균 50만 개 이상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J노믹스 내놓은 문재인 후보

J노믹스 내놓은 문재인 후보

문제는 나라 곳간 사정이다. 정부의 계획대로만 지출을 늘려도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는 40%를 넘는다. 문 후보의 계획대로면 올해 400조5000억원인 예산은 2020년 490조6300억원 수준까지 올라간다. 정부 계획상 2020년 예산규모는 443조원이다. 재원조달방안이 없으면 국가 빚 규모는 크게 불어날 수밖에 없다.

문 후보 측은 재정충당 대책으로 ▶5년간 세수 자연증가분 50조원 ▶법인세 실효세율 조정 ▶정책자금 활용 확대를 냈다. 이 정도론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현재 국가 재정이 7%나 되는 지출증가율을 떠받칠 만큼 안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증세가 불가피하다. 문 후보도 ‘국민 동의하에’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증세를 논의할 만하다”고 밝혔다. 한데 담뱃세 인상 같은 서민 증세가 이뤄진 상황이다. 증세의 초점이 법인세 인상으로 옮겨 갈 수 있다는 얘기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세계 각국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법인세를 낮추고 규제를 푸는 상황에서 한국만 반대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문 후보의 기자회견문에는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사람중심 성장경제’라는 제목이 붙었다. 5년 전 분배에 방점을 찍은 경제민주화 대신 성장을 택한 게 눈에 띈다. 보수를 끌어안으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성장과 부흥’ 전면에=문 후보는 2012년 대선 때 ‘사람이 먼저인 세상,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 상생 번영의 경제 민주화’라는 슬로건을 내놨다. 이번엔 ‘사람중심 성장경제, 경제부흥 2017’이다. ‘성장과 부흥’이 들어오고 ‘경제민주화’란 구호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온도 차이는 분명하다.

문 후보 측 이용섭 비상경제대책단장은 “5년 새 입법이 많이 이뤄져 경제민주화 필요성은 줄었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는 ‘공정한 성장’을 강조하며 “정부가 보육·교육·의료·요양·안전·환경 등 ‘인간다운 삶’의 유지에 필수적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소득이 낮은 개인이라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하겠다”고 설명했다.

◆‘재벌 개혁’ 대신 ‘갑질 근절’=문 후보는 공정한 경제를 위한 대표 수단으로 5년 전엔 재벌 개혁을 내세웠다. 이번엔 ‘갑질 근절’로 이동했다. 문 후보는 “대기업의 갑질은 반칙과 기득권이 만든, 그야말로 경제적폐다. 공정한 시장경쟁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뜻은 상생인데, 동원한 표현은 상당히 전투적이다. 그러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소송제, 집단소송, 단체소송제 도입을 약속했다. 시민이 직접 대기업을 상대로 불공정 행위를 다투고 시정하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규제는 철폐가 아니라 재설계로 방향을 틀었다. 문 후보는 이날 주한 외국경제단체 관계자와의 대화에서 “규제 방향은 자율규제와 최소 규제를 원칙으로 하고, 기업경영에 불필요한 규제는 획기적으로 축소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공공투자에 동원=문 후보는 “정부가 보육, 임대주택, 요양 분야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국공채를 발행하는 경우 국민연금이 적극 투자하도록 하겠다”며 “국공채 투자는 가장 안전한 투자이며 기본적인 수익률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도 과잉공급 상태인 노인요양기관이나 어린이집 같은 복지시설을 지었을 때 거기서 수익이 날지 미지수다. 수익이 안 나면 약속한 이자를 주기 위해 예산으로 메워야 한다. 재정당국이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추가로 예산을 써야 할지도 모르는 채권을 발행하려 할지도 의문이다. 공공투자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아 연금재정 건전성이 나빠질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에 여기저기서 손을 대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 가입자의 돈인데 왜 정부가 함부로 하느냐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조현숙·이소아·하남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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