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후보의 국민연금 임대주택 투자 공약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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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문재인의 경제비전' 발표를 선언했다. 문 후보는 공정거래위원회 개혁을 통한 '갑질' 철폐, 국민연금 공공투자 등도 약속했다. 오종택 기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문재인의 경제비전' 발표를 선언했다. 문 후보는 공정거래위원회 개혁을 통한 '갑질' 철폐, 국민연금 공공투자 등도 약속했다. 오종택 기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국민연금 기금을 활용해 국공립 어린이집, 임대주택, 요양시설 등을 짓겠다고 공약하면서 국민연금 공공투자를 둘러싸고 논란이 재연됐다.

문 후보 경제비전 공약에 포함 #국민연금에 국공채 판 돈으로 #보육시설 임대주택 요양시설 건설 #공약 찬반 논란 #찬성론 "수익률만 보장된다면 투자해도 무방" #반대론 "수익 내기 힘들어 연금에 손실 초래"

문 후보는 12일 ‘문재인의 경제 비전’을 발표하면서 “정부가 보육, 임대주택, 요양 분야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국공채를 발행하는 경우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투자하도록 하겠다. 국민연금의 국공채 투자는 가장 안전한 투자이며, 기본적인 수익률이 보장된다”고 말했다.세 가지 분야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공채를 발행하되 그걸 국민연금이 매입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수익률이 보장되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 기금은 558조원이다. 워낙 큰돈이다 보니 군침을 흘리는 데가 많다. 민주당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도 국민연금의 공공분야 투자를 들고 나왔다. 국민연금 기금 10조원으로 다세대·다가구 주택 5만 가구(가구당 방 3개, 2억원)를 매입해 청년 15만 명에게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민주당은 “5% 이상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며 “청년층의 주거 고통을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토교통부도 지난해 초 중산층 임대주택인 뉴스테이 건설에 국민연금을 갖다 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후보의 공약을 실행하려면 두 가지 문제를 풀어야 한다. 국민연금으로 복지 시설을 지었을 때 거기서 수익이 날지가 관건이다. 노인 요양시설과 어린이집은 이미 과잉 공급돼 있다. 믿을만한 시설이 부족할 뿐이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약속한 이자를 주기 위해 재정 당국이 예산으로 메워야 한다. 이것도 힘들면 수익을 보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임대주택은 수요가 탄탄하기 때문에 부지만 잘 확보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첫 국민임대주택인 경기도 수원의 아파트 [중앙포토]

국내 첫 국민임대주택인 경기도 수원의 아파트 [중앙포토]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장진환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은 "국공립 시설은 월 1만원 정도 밖에 내지 않는데 반해 민간 시설은 특별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15만원 가량을 부담한다. 이때문에 학부모들이 민간 어린이집을 기피하는 것"이라며 "국공립 시설을 지을 돈으로 학부모 부담을 평등하게 해 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어린이집[중앙포토]

경기도 성남시의 한 어린이집[중앙포토]

 재정 당국이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추가로 예산을 써야할 지도 모르는 채권을 발행하려 들지도 의문이다. 기재부는 그 동안 이런 꼬리가 붙은 채권 발행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지난해 민주당이 국민연금 공공투자 방안 내놨을때 유일호 부총리가 나서 반대 입장을 표시했다. 공공투자의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아 연금 재정 건전성이 나빠진다는게 주 이유였다. 또 일반 재정으로 공공투자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과 봤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도 지난해 총선 이후 민주당의 공공투자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수익률 의문 때문이다. 과거의 아픈 기억도 있다. 1994~2005년엔 기획재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등에 국민연금 기금 45조원을 갖다 쓴 뒤 이자를 제대로 쳐주지 않은 적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95~2005년 복지부가 민간어린이집·요양원·노인복지시설 등에 장기 저리의 시설자금과 기능보강비용을 대여했다. 특히 94~98년 민간어린이집 5518곳에 6788억원을 대여했다가 이자가 너무 싸다는 비판을 받고 회수했다. 못 받은 돈을 지난해서야 다 회수했다.

 국민연금 기금에 여기저기서 손을 대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울 수도 있다. 가입자의 돈인데 왜 정부가 함부로 하느냐는 불만을 살 수 있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문 후보가 국민연금 기금을 국민의 돈이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국민연금 가입자의 돈이다. 가입자는 전체 국민의 절반이 안 된다"고 말했다.

 복지부에선 최근 변화의 기류도 감지된다. 수익률만 보장된다면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주식이든 채권이든 간에 손해를 보면서 살 수는 없다. 수익이 보장된다면 안 살 이유가 없다. 공적인 용도에 쓰인다면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수익을 보장할 거라면 주택관련 기금을 활용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시장이 받쳐주지 않아서일 텐데, 그렇다면 굳이 국민연금을 가져갈 이유가 없다"고 경계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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