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자연산 엄마와 양식 아빠, 명태 집안 새 족보를 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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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한해성수산자원센터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 연구 어류동. 지름 2.5m 수조에 1.5㎜ 크기의 수정란 2만여 개가 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센터 관계자가 조명을 비추자 갓 부화한 길이 4~5㎜의 치어(어린 물고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관계자는 “저기 보이는 작은 물고기가 오늘 아침에 부화한 놈이다”고 소개했다.

강원도 고성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지난달 거진 앞바다서 자연산 확보 #3만개 산란, 치어 8000여 마리 부화 #명태 유전자 다양성 높이기 위해 #다음 산란 땐 자연산 수컷 넣을 계획

최근 한해성수산자원센터에서 자연산 어미 명태와 양식 수컷 명태가 수정란을 만들어 새로운 유전자의 치어가 부화했다. [사진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최근 한해성수산자원센터에서 자연산 어미 명태와 양식 수컷 명태가 수정란을 만들어 새로운 유전자의 치어가 부화했다. [사진 한해성수산자원센터]

3년째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수산자원센터는 지난달 7일 입수한 길이 50㎝의 자연산 어미 명태와 양식 수컷 명태 사이에서 형성된 수정란을 치어로 부화시키는 데 최근 성공했다. 수산자원센터 서주영(39) 박사는 “그동안 자연산은 자연산끼리, 양식은 양식끼리 수정했는데 자연산 암컷 명태와 양식인 수컷 명태 사이에서 치어가 부화한 건 처음”이라며 “새로운 모계 명태 확보로 명태의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바다에서 살던 자연산 명태의 건강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명태 개체가 많아지면 그만큼 양식 명태들이 동해 바다에 더 잘 적응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앞서 2015년 1월 31일 수산자원센터는 이번에 입수한 자연산 명태와 다른 자연산 암컷 명태를 처음 확보했다. 이 암컷 명태는 그 해 2월 자연산 수컷 명태와 수정을 통해 국내 최초로 인공 명태 부화에 성공했다. 당시 수산자원센터는 70만5000개의 수정란을 확보했다. 이들 중 19만 개를 동해수산연구소에, 7만5000개를 강릉원주대에 분양했다. 동해수산연구소는 이 수정란에서 태어난 명태를 어미로 키워 알을 낳게 하고, 이를 치어로 부화시키는 명태 완전 양식에 세계 최초로 성공하면서 지난해 10월 큰 주목을 받았다.

강원도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서주영(39) 박사가 명태살리기 프로젝트 연구 어류동에서 1세대 명태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강원도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서주영(39) 박사가 명태살리기 프로젝트 연구 어류동에서 1세대 명태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새로운 모계가 된 이번 명태는 강원양식생물연구소가 수산자원센터에 기증했다. 이 명태는 지난달 4일 고성 거진항 인근 앞바다에서 자망에 걸렸다. 자연산 명태를 발견한 어민이 명태를 강원양식생물연구소에 전달했고, 연구소 측이 수산자원센터로 보냈다. 권오남(45) 강원양식생물연구소장은 “명태 유전자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자연산 명태와 양식 명태가 함께 있는 수산자원센터로 명태를 옮겼다”고 말했다.

자연산, 수조로 옮기면 대부분 5일 내 폐사

이후 연구팀은 수조에 명태를 넣었는데 산란하는 것을 발견해 곧바로 수조에 수컷 양식 명태 3마리를 합류시켰다. 어미 명태는 두 차례에 걸쳐 알 3만 개를 산란했다. 서 박사는 “수정란 중에서 얼마나 부화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10일 현재 8000여 마리의 치어가 부화했다.

새로 들어온 자연산 어미 명태. 박진호 기자

새로 들어온 자연산 어미 명태. 박진호 기자

서 박사가 지난 한 달여간 새로운 어미 명태를 구한 것을 공개하지 않은 건 폐사 우려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연산 명태의 경우 스트레스에 약해 그물에 걸리면 오랜 시간 버티지 못하고 폐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지난 5일 오전 10시쯤 경북 울진 앞바다에서 잡힌 자연산 명태의 경우 동해수산연구소로 옮겨졌지만 지난 7일 폐사했다. 또 수산자원센터 측이 2014년 2월부터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난해 5월까지 195마리에 달하는 자연산 명태를 확보했는데 이 중 95%가 닷새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현재 센터에 남아 있는 자연산 명태는 암컷 1마리와 수컷 5마리 등 모두 6마리뿐이다. 서 박사는 “프로젝트의 핵심은 어미 명태 확보와 지속적 생존 확보”라며 “오랜만에 어렵게 확보한 어미 명태를 다음 산란기까지 건강하게 키우겠다”고 말했다. 또 “2014년 2월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 3년간 자연산 어미 명태가 이렇게 장기간 생존하면서 산란과 수정·부화까지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 만큼 이번 어미 명태의 생존이 특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수산자원센터에는 완전히 자란 명태 1세대(40~50㎝) 5000여 마리와 0.5~6㎝ 치어 200만 마리가 있다. 동해수산연구소에는 다 자란 명태 500여 마리와 치어 5만여 마리가 자라고 있다. 서 박사는 “명태의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다음 산란시기에는 앞으로 잡힐 자연산 수컷 명태를 함께 넣어 다양한 유전자의 명태를 부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성=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50만원 포상”에 잡힌 명태 1마리로 손자 3만 마리 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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