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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지식재산 정책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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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민화창조경제연구회(KCERN)이사장

이민화창조경제연구회(KCERN)이사장

4차 산업혁명은 지식재산 혁명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보다 지능적인 사회로 전환되는 4차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창조성의 산물인 지식재산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4차 산업혁명 관련 핵심 기술의 전 세계 특허가 최근 5년간 12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세계 특허 소송시장이 연간 500조원에 달하고 있음에 주목하자.

특허·상표·저작권, 따로 관할하면 #AI 등 새 지식재산에 대응 못해 #지식재산 전담할 행정체계 필요 #4차 산업혁명은 지식재산 혁명으로

기업의 가치가 제조에서 기술을 거쳐 이제 지식재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 세계 선도 기업들은 지식재산을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오션토모사의 분석에 따르면 S&P 500대 기업의 가치에서 지식재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유형자산을 초과한 지 오래다.

창업도 지식재산을 중심으로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다. 2016년 MIT의 구즈만 교수 연구에서 창업 자체는 경제 성장과 관련 없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창업이 아니라 차별화된 창업이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동일 연구에 따르면 지식재산을 보유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35배 빨리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재산의 경쟁력은 결국 대학과 연구소 같은 혁신 생태계의 역량에 달려 있다. 결국 혁신 생태계의 활성화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지식재산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혁신 생태계와 산업 생태계의 긴밀한 결합과 선순환을 촉진하는 국가 제도가 4차 산업혁명의 경쟁력이라는 의미다. 특히 결합을 저해하는 규제의 개혁이 지식재산 정책에서도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지식재산은 전통적 개념을 벗어나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발명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지식재산이 나타나는가 하면, 하나의 제품이나 콘텐트에 전통적 개념의 지식재산들이 함께 녹아들어 특허·상표·저작권 같은 전통적 지식재산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닌텐도의 캐릭터(저작권)와 나이앤틱 랩스의 증강현실 기술(특허권)이 융합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한 ‘포켓몬고’가 대표적 사례다. 분리된 전통적 지식재산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지식재산 융합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정책의 통합적 접근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재산 정책은 특허와 저작권이 분절화돼 있어 통합을 저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지식재산 경쟁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범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주요국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선도 국가들은 새롭고 다양한 지식재산을 ‘아이디어 보호’라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기 위해 집중형 지식재산 행정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사무국은 특허·상표·저작권 등 지식재산권을 통합 관장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은 단일특허제도 출범과 통합특허법원 설립 등 지식재산과 관련한 행정·법체계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특허청을 지식재산청으로 확대 개편한 영국을 위시해 캐나다·스위스·싱가포르 등도 산업재산권(특허·상표·디자인)과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관련 핵심적 행정 기능을 하나의 기관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세계 주요 국가는 지식재산을 더욱 강력하게 보호하고 집행하기 위해 최고 통치권자 직속의 지식재산 정책 추진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 직속의 지식재산집행조정관(장관급)을 두어 지식재산 보호·집행 정책을 총괄하게 하고 있고, 일본은 총리 직속의 지식재산전략본부를 통해 지식재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만큼이나 지식재산제도의 혁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분산된 지식재산권 행정체계와 경직성은 그 자체가 규제의 장벽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신기술은 특허, 캐릭터는 저작권, 명칭은 상표 등과 같이 지식재산이 전통적 경계에서 소관 부처마다 분산돼 운영되기에 포켓몬고 같은 긴밀한 지식재산권 융합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 어렵다. AI 발명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지식재산 등장에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긴 더욱 곤란하다.

전통적인 지식재산 분류는 아이디어를 효율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편의상 구분한 것이다. 그 경계가 모호한 지금, ‘아이디어 보호’라는 시각에서 지식재산을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집중형 행정체계는 분산과 경직성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국가 지식재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11년 지식재산위원회를 발족했다. 하지만 범부처 지식재산권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출범 당시와는 달리 위상이 축소됐기 때문이다.

주요국에 비해 늦거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우리의 지식재산권 체제를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선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와 관심이 중요하다. 지식재산집행조정관을 대통령 직속으로 두어 지식재산 정책의 동력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어떨까. 지식재산을 강력히 보호해 혁신가가 몰리고, 부를 창출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 지식재산 행정체계의 혁신적 통합이 필요하다. 기술 융합을 저해하는 국가 제도의 혁신이 시급한 과제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KCERN)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