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중 정상회담 결과만 기다리는 한국 신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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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메리카 퍼스트’와 ‘중국 꿈’의 대결로 관심을 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의 첫 회동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한반도 운명과 직결된 북핵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된 미·중 정상회담이건만 정작 당사자인 한국의 존재감은 그 어떤 시기보다 가볍기 때문이다. 정상 상황이었다면 미·중 회담에 앞서 미국과의 긴밀한 사전 조율을 통해 우리 입장을 보다 많이 반영했을 것이다. 하나 우리의 리더십 부재로 이번엔 태평양 건너 회담을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신세가 됐다. 일각에선 이번 회담을 우리 없이 한반도 문제가 논의된 얄타회담에 비유하는가 하면, 중요 사항 결정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코리아 패싱’ 현상을 우려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 정부가 넋 놓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회담 전 허버트 맥매스터 미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하고 지난달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나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방한 시 우리 입장을 꾸준하게 설명하는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최고 지도자 공백으로 인한 구멍을 메우기엔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회담 직전 트럼프와 직접 통화하며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응한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거론한 점 등과 비교할 때 대통령 궐위에 따른 안보의 빈틈은 더욱 크게 보인다.

문제는 앞으로다. 북한은 언제라도 6차 핵실험을 할 태세다. 트럼프 정부는 6일 화학무기 사용 의심을 받는 시리아 정부군을 공습하는 등 버락 오바마 정권과는 사뭇 다른 공세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북한이 넘어서면 곧바로 응징에 나서겠다는 경고로도 해석된다. 한반도 정세가 6·25전쟁 이후 가장 위험하다는 말이 나온다. 현재 우리 정부는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이긴 하지만 이 같은 비상 시국을 맞아 적극적인 외교로 한반도 정세 관리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미국 최고위급 인사와의 소통으로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하고, 16~18일 예정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방한 계기도 잘 활용해야 한다. 특히 우리 대선후보들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안보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