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국 때 스마트폰 뒤지고 페북 비번 내놓으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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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에 입국하려는 외국인은 앞으로 스마트폰을 보여주고 SNS 계정 비밀번호를 알려줘야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자신의 사상(이데올로기)에 대한 답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단기 방문일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비자 인터뷰도 훨씬 까다롭게, 장시간 진행될 전망이다.

국토안보부, 테러 예방 명목으로 #한국인 포함 외국인 심사 강화 추진 #전화 내역, 인터넷 방문기록 살피고 #이데올로기 검증할 질문까지 검토 #시민단체들 “인권·자유 침해” 반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미국 국토안보부가 테러 예방 명목으로 외국인에 대한 입국 심사를 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은 우리나라와 같은 비자면제국뿐 아니라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동맹국을 포함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토안보부 존 켈리 장관의 수석 고문인 젠 해밀턴은 “미국 입국 의도와 관련해 어떠한 의문이 있을 경우, 당사자가 미국에 오는 합리적인 이유를 우리가 만족할 만큼 충분히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가장 큰 변화는 스마트폰 검사다. 모든 방문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입국장에서 스마트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물론 다른 정보까지 샅샅이 뒤져 보겠다는 의도다.

해밀턴은 “누구와 통화하는지 알아보는 게 목적이다. 일반인의 휴대전화에서 얻은 정보가 매우 유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 정보와 비밀번호도 요구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 공개적으로 올린 포스트는 물론 사적으로 올린 내용도 보고 입국 가능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은 지난 2월 의회에서 “미국 입국자에게 인터넷에서 어떤 사이트를 방문했는지를 물어보고, 비밀번호를 받아서 그가 인터넷에서 한 일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면 미국에 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50여 시민 단체가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행위는 기본권 침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한편, 입국 심사에는 신청자의 재정 상태를 알 수 있는 금융 기록 제출, 사상(이데올로기) 검증 관련 질문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등을 걸러내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연설에서 “우리의 체제를 믿지 않는 이들은 입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방안은 프랑스·독일 등 미국의 동맹은 물론 비자면제프로그램이 적용되는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38개국가도 똑 같이 적용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한국은 2008년부터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가입돼 90일 이내의 단기 방문시 무비자로 미국에 체류할 수 있다.

이에 앞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비자 신청자에 대한 ‘극단적 심사’(extreme vetting)를 강조한 공문을 지난달 전 세계 미국 대사관에 배포한 바 있다.

미 당국은 대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이같은 엄격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통화 내역 조회, SNS 비공개글 조회 등의 광범위한 조치는 인권과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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