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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견이 나를 위험하게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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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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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조현병’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17세 살인’ ‘8세 여아 살해’ 등이 주르륵 뜬다. 이웃에 사는 생면부지 8세 아이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한 사건이 최근 벌어졌는데, 이 사건의 용의자가 조현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탓이다. 지난해 우리 사회에 여성 혐오 논란을 불러일으킨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에 이어 또다시 조현병 환자가 모르는 타인을 대상으로 끔찍한 강력범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에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공포심이 치솟고 있다.

때마침 5월 30일부터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을 까다롭게 하는(강제 입원 시 국공립병원 의사 1인 포함 2인의 진단 필요) 정신보건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있어 불안감은 더 크다. 일부에선 위의 두 사건을 언급하며 “이번 법 시행으로 수만 명의 정신질환자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데 우리 사회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느냐”며 공포심을 부추긴다. 실제로 바뀐 정신보건법에 따라 향후 입원 절차뿐 아니라 현재 3개월 이상 강제입원 중인 3만여 명의 정신질환자들은 전원 입원 적격심사를 받게 된다. 수만 명까지는 아니어도 이 중 일부는 퇴원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 사회가 더 위험해질까.

전문가들은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편견이 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0.08%로 일반인(1%)에 비해 현저히 낮다. 강력범죄로 한정해도 일반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편견이 확산하는 이유는 치료받지 못해 망상과 환각·환청에 시달리는 극소수 환자가 벌인 사건을 경찰이나 일부 언론이 지나치게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이번 17세 살인사건의 경우도 계획적이고 기억을 못한다는 점에서 조현병의 전형적 특성과는 거리가 먼데도 정확한 진단 없이 조현병만 부각되고 있다.

조현병은 절반 이상이 20세 전후를 기점으로 발병하는데 필요한 약물치료 등만 적절히 하면 대부분 사회생활에 아무 이상이 없다. 문제가 되는 건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상황인데, 최근 분위기처럼 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인 양 낙인찍어버리면 환자와 가족 모두 치료를 기피해 치료받을 기회를 놓치게 된다. 결국 그 위험은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돌아올 수밖에 없다.

“서둘러 낙인찍는 대신 병을 더 많이 드러내 치료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임예슬 사무관 얘기가 자꾸만 떠오른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