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방방곡곡 시골버스로 출발~ ‘농촌 아이돌’이랍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지난 8년간 방방곡곡 시골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농촌 어르신들의 말벗이 돼준 트로트 가수 김정연씨. 그는 “이제는 어르신들의 장보따리만 봐도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지난 8년간 방방곡곡 시골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농촌 어르신들의 말벗이 돼준 트로트 가수 김정연씨.그는 “이제는 어르신들의 장보따리만 봐도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농촌 아이돌’ ‘국민 안내양’ ‘뛰뛰 빵빵이’. 방송 리포터 겸 가수 김정연(48)에게 붙은 별명들이다. 그가 시골버스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생생한 사연을 전하는 ‘시골버스’는 장수 프로그램 ‘6시 내고향’(KBS 1TV)의 인기 코너다.

‘6시 내고향’서 안내양 8년째 김정연 #‘노찾사’ 활동하다 트로트 가수 전향 #어르신들과 눈높이 맞춰 얘기 보따리 #책도 출간 “순회 토크콘서트 열고파”

김씨는 2010년 초부터 이 코너를 시작해 8년째 ‘시골버스’의 안내양 역할을 하고 있다. 최단기간 시골버스를 가장 많이 탄 사람으로 대한민국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가 버스를 타고 달린 거리는 40여 만㎞. 지구 열 바퀴를 돈 셈이다.

김씨가 촌스러운 안내양 복장을 하고 버스에 올라타면, 시골 어르신들로부터 뜨거운 환대를 받는다.

지난 8년간 방방곡곡 시골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농촌 어르신들의 말벗이 돼준 트로트 가수 김정연씨. 그는 “이제는 어르신들의 장보따리만 봐도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지난 8년간 방방곡곡 시골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농촌 어르신들의 말벗이 돼준 트로트 가수 김정연씨.그는 “이제는 어르신들의 장보따리만 봐도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김씨 없는 ‘시골버스’ 코너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제작진은 그가 만삭이었던 2013년 9월, 잠시 ‘시골버스’의 운행을 중단했지만, 시청자들의 청원에 힘입어 1년3개월 만에 다시 코너를 부활시켰다.

김씨는 시골장에서 장을 보고 버스를 타는 어르신들의 보따리를 받아주고, 투박한 손을 잡아주는 등 살가운 딸처럼 군다. 눈높이를 맞추며 귀를 활짝 열어놓는 그에게 어르신들은 걸쭉한 입담으로 인생살이를 실타래처럼 풀어놓는다.

“양파망에 담긴 강아지, 쥐약, 재래식 변기용품 등 장바구니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물건들이 참 많아요. 보따리에서 닭이 튀어나와 기절초풍하기도 했죠. 시골버스에는 어르신들의 희로애락이 다 들어있어요. 순도 100%의 리얼리티죠.”

‘나처럼 백혈병 걸린 사람을 도와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난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발 노점상을 하는 노부부, 첫 월급을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께 바친 손자, 아빠에게 간 이식을 해준 고3 딸, 치매 걸린 장모를 극진히 보살피는 사위, 수십년간 남매처럼 살아온 본처와 후처 등등. 김씨가 발로 뛰며 건져올린 감동 사연들이다.

시골버스 안에서 농촌 어르신들과 포즈를 취한 가수 김정연 씨. [사진 최정동 기자]

시골버스 안에서 농촌 어르신들과 포즈를 취한 가수 김정연 씨.[사진 최정동 기자]

그는 최근 ‘시골버스’를 타며 접한 사연들을 모아 『뛰뛰빵빵 김정연의 인생버스』란 책을 펴냈다.

“삶의 바닥을 치던 때, 내게 용기와 희망을 줬던 어르신들의 사연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멤버에서 트로트 가수로의 전향, 부모가 극구 반대했던 남자와의 결혼, 남편의 사업 실패, 46세에 얻은 첫 아이, 6년간 연을 끊고 지냈던 부모와의 화해 등 김씨의 삶은 굴곡이 적지 않았다. 그는 그런 쓰디쓴 경험이 방송 활동에 ‘약’이 됐다고 했다.

“노찾사 활동 때부터 ‘사람의 무늬’를 찾는 일에 관심을 가졌어요. 박봉을 견디며 13년간 라디오 리포터 일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스스로 굴곡진 삶을 살았기에 어르신들의 얘기가 더욱 절절하게 다가왔어요. 앉으나 서나 자식 걱정하는 어르신들 덕분에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강해졌습니다. 아들 태현이는 어르신들이 주신 선물이죠.”

복 콘서트’를 무료로 열기도 했다. 사업실패를 딛고 공연기획자로 성공한 남편 김종원씨가 큰 도움을 줬다.

김씨는 “어르신들이 시골버스 안에서 신나게 얘기하고 노래할 수 있도록 추임새 역할을 하다보니 지금까지 롱런하게 됐다”며 “말쟁이와 가수로서의 재능을 살려 문화적 소외감을 느끼는 어르신들을 위해 순회 토크콘서트도 열고 싶다”고 말했다.

글=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