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폐석이 요석으로 둔갑하는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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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4강전 1국> ●커   제 9단 ○이세돌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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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보(57~71)=바둑은 어느덧 중반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이세돌 9단은 변변한 전과가 없다. 좌하귀에서 벌어진 1차전 결과, 백은 겨우 미생에서 벗어났을 뿐 제대로 된 실리가 없다. 그렇다고 향후 중앙 전투를 위한 확실한 발언권을 얻은 것도 아니다. 중앙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흑 석 점이 백의 두터움을 깎아 먹고 있다. 우하귀 전투에서 버려진 돌들이지만 이상스레 기분이 나쁘다.

참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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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를 고쳐 앉은 커제 9단에겐 여유가 넘친다. 백58로 협공하자 커제 9단은 느긋하게 흑59로 배석의 변화를 꾀해본다. 좌상귀는 백에게 내어주는 대신 우상귀 쪽을 크게 키워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이제부터는 전투 대신 수비만 잘해도 흑이 승산이 있다는 계산서가 나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대로 얌전하게 물러설 이세돌 9단이 아니다. 백62. 승부수를 띄운다. 여기선 '참고도' 백1을 간절히 먼저 두고 싶지만, 서로 집을 지키는 순순한 진행으로는 분위기 반전이 어렵다. 먼저 백68까지 흑의 영토에 발자국을 남겨놓은 다음 되돌아가 70으로 우상귀를 지켰다. 그런데 다음 한 수가 뼈아프다. 흑71이 놓이자 중앙에 떠있던 흑 석 점이 백마 사냥을 위한 튼튼한 그물로 변했다. 흑은 반면에 드넓게 포위망을 치고 백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폐석이 요석으로 둔갑하는 순간, 바둑의 마법이 일어났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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