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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영국 300년 영토분쟁지 지브롤터, 브렉시트 여파로 갈등 재점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스페인 최남단에 5㎞ 길이로 뻗어있는 영국령 지브롤터는 여의도 면적의 80%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여서 영국과 스페인이 300년간 영토분쟁을 벌여왔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계기로 지브롤터가 또다시 양 국간 분쟁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스페인 남단에 위치한 지브롤터는 영국령으로,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스페인 남단에 위치한 지브롤터는 영국령으로,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27개 회원국에 보낸 브렉시트 협상 가이드라인에 지브롤터 문제를 포함시켰다. 그는 “영국이 EU를 떠난 이후 EU와 영국 간에 맺어지는 어떤 협정도 스페인의 동의가 없이는 지브롤터에서 적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자유무역협정(FTA) 등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EU가 하게 될 합의 내용을 스페인이 반대할 경우 지브롤터에선 적용할 수 없다는 의미로, EU 지도부가 떠나는 영국 대신 회원국인 스페인을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EU 고위 관리는 “이 사안에 두 당사자가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EU는 회원국의 이익을 대변한다”며 “회원국이 지금은 스페인”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투스크 EU정상회의 의장 "스페인 동의 없이 영국-EU 합의 지브롤터에 적용 못해"

 스페인 정부는 반색했지만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지브롤터에 대한 영국의 지지는 확고하고 바위처럼 단단하다”며 반발했다.

 스페인의 영토였던 지브롤터는 1704년 영국이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 개입하며 네덜란드와 연합해 해전을 벌여 점령한 지역이다. 이후 1713년 영국이 할양받은 이후 300년 가까이 스페인의 반환 요구를 거부해왔다. 1969년 영국의 직할지로 남을 것인지 독립국으로 바꿀 것인지를 놓고 지브롤터에서 주민투표를 했는데, 영국의 보호 아래 자치정부를 수립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지브롤터는 영어를 쓰고 화폐도 유로가 아니라 영국 파운드화를 사용한다. 인구가 3만 명밖에 되지 않는 곳이지만 영국 항공모함이 정박하는 기지이며 북아프리카와 3.2㎞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지브롤터의 상징인 바위 산

지브롤터의 상징인 바위 산

 2013년에는 지브롤터 해역에서 제트스키를 타던 주민 2명에게 스페인 해경이 고무탄을 쐈다고 영국 언론이 보도한 것을 계기로 갈등이 불거졌다. 영국 정부는 어류 서식지 조성을 이유로 지브롤터 앞바다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했다. 육상으로 지브롤터에 가려면 스페인 세관을 통과해야 하는데, 스페인 정부가 자국 어선의 통행을 막으려는 것이라며 국경을 통제하는 바람에 지브롤터행 차량들의 발이 묶이기도 했다. 당시 유럽 지도부가 중재에 나선 후에야 갈등이 풀렸다.

 영국과 스페인의 지브롤터 분쟁은 경기침체와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지브롤터는 낮은 법인세를 바탕으로 외자를 유치해 경제 성장을 해온 반면 스페인은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 등으로 고전해왔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법인세를 낮춰 기업들을 끌어들일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EU가 벼르는 상황이어서 지브롤터 분쟁이 향후 EU와 영국 간 줄다리기의 예고편일 수 있는 셈이다. BBC는 브렉시트 가이드라인에 지브롤터 문제가 26개 핵심 항목에 포함된 것이 스페인의 로비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오는 29일 EU 27개 회원국이 합의하면 공식 채택될 브렉시트 협상 가이드라인은 영국이 EU 탈퇴 조건에 먼저 합의해야 자유무역협정 등 후속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을 못박았다. 영국 정부는 자동차나 금융 등 일부 분야에선 특별 협정 등을 EU와 맺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내놨었지만 EU는 그럴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영국 야당들은 “가이드라인은 EU가 지닌 힘을, 그리고 유럽 동맹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는 영국 정부의 부주의함을 보여준다"거나 "EU가 자신들은 준비됐으니 한 판 붙자고 한 것"이란 반응이 보였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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