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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37일 남은 대선, ‘성장’ 외치는 후보 보고 싶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25호 02면

사설

19대 대통령선거(5월 9일)가 40일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성장 공약은 선거공약집에서 잠자고 있을 뿐, 이를 입에 올리는 후보는 드물다. 크게 세 가지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첫째, 성장보다 훨씬 달콤한 말이 있다. 분배다. 재벌과 부자한테서 세금 더 걷어 복지를 늘린다. 전 국민에게 월급처럼 기본소득을 나눠주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민간부문 일자리가 워낙 귀하니 공무원과 공기업·기관 일자리를 늘린다. 하지만 기업이 만든 부가가치가 아니라 세금 나눠먹기로 일자리와 소득 늘리기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건 상식이다. 지난해 한국은행 국민계정을 보면 민간투자와 소비는 죽을 쑤었는데 세금이 잘 걷혀 국민총소득 중 정부소득 비중이 늘었다.

둘째, ‘성장’ 구호가 유권자의 인기를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은 ‘파이를 키울 때까지 허리띠를 졸라매자’며 서민을 설득해 왔지만 소득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졌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돼도 내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인식도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성장보다는 분배를 외칠 때 유권자의 호응이 크다. 지난달 28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이 내놓은 조사자료가 그렇다. 지난해 상반기 석 달간 전국 1951가구 3443명의 복지인식을 조사하면서 ‘성장과 분배 중 어느 것이 중요한가’ 물었더니 50.4%가 분배를, 49.6%가 성장을 택했다.

셋째, ‘성장’은 후보와 위정자들에게도 두려운 구호가 됐다. 연 7% 성장률을 내건 노무현 전 대통령,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앞세웠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7-4-7 공약, 박근혜 전 대통령의 4-7-4 공약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 국민의 원성을 샀다.

‘성장’은 이토록 인기공약 품목의 자리를 빼앗기고 있지만 성장 없는 복지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허구임이 분명한 만큼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은 눈앞의 표심 좇기에만 급급해 ‘성장’ 담론을 외면해선 곤란하다. 성장 없이는 분배도 복지도 헛된 구호에 불과할 뿐이며 ‘성장 없는 분배’ 구호는 곧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란 걸 남미 사회주의 포퓰리즘 정권들의 몰락에서 똑똑히 보았지 않은가.

게다가 한국 경제는 ‘중진국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7561달러(약 3198만원)로 2006년 이후 11년째 3만 달러 벽에 막혀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2만 달러 터널을 뚫는 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긴 12년이 걸렸는데, 2만 달러 대터널에서 또다시 막힌 지각생 신세다.

대선 후보들이 성장 전략을 내놓지 않은건 아니다. 문재인 후보의 국민성장 슬로건을 비롯해 공정성장(안철수)·혁신성장(유승민)·동반성장(정운찬) 등 미사여구를 곁들인 화려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은 성장 개념에 경제민주화 등 다양한 개념을 섞은 것이라 명료하지 못할뿐 아니라 성장을 이끌어낼 구체적 방법과 세부 공약이 결여돼 있어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국내 최대 기업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가 ‘19대 대선 후보께 드리는 경제계 제언’을 내놓으며 성장담론 없는 재벌개혁, 근로시간 단축 논의에 큰 우려를 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경제의 지난한 과제인 구조개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 강한 의지와 더불어 구체적 방안이 녹아 있어야 호소력 있는 성장 공약이 될 수 있다.

성장을 견인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는 금리 인하와 돈 풀기, 재정지출 등이다. 하지만 세금을 손쉽게 동원하는 이런 방식엔 한계와 부작용이 따른다. 시간이 걸리고 고통이 따르더라도 경제의 체질을 단단하게 만드는 구조개혁만이 살길이다. 따라서 대선 후보들은 노동·공공·금융·교육  4대 부문의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결코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국민에게 설득하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분배와 복지에 목말라하는 유권자들의 요구를 헤아리면서도 용기 있게 성장을 추구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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