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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 박근혜 등에 업고 물의 … 10·26 이후 전방부대에 격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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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두환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보았고, 실패할 경우 ‘아버지(박정희 대통령)를 욕보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전하라고 했다.”

전두환, 내주 발간 회고록서 주장 #“박, 2002년 대선 출마 도움 요청 #그의 능력으론 무리한 욕심이라 생각 #내가 완곡하게 뜻 접으라 말해줘”

다음 주 발간될 3권 분량의 『전두환 회고록』(사진)의 일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29년 만에 처음으로 내놓은 책이다. 여기에서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2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의 전신)을 탈당해 미래연합을 꾸리곤 지원 요청을 했으나 거절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박 의원(박 전 대통령 지칭)이 나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의 대권 의지를 내비치며 힘을 보태줄 것을 요청했다”며 “나는 생각 끝에 완곡하게 그런 뜻을 접으라는 말을 전했다. 박 의원이 지니고 있는 여건이나 능력으로는 무리한 욕심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곤 “나의 선의의 조치와 충고를 고깝게 받아들였다면 나로선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달리 ‘단임(單任) 대통령’ 약속을 지켰다는 점을 거론하며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계승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를 배신했다는 건 얼토당토않은 얘기”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주요 부분 요약.

◆10·26 이후 박근혜에게 전달한 돈의 정체=“재임 중 박근혜 자매를 몇 차례 식사에 초대했다. 간접적으로 섭섭하지 않게 내 진정을 표현하곤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재산 중 영남대는 설립 과정부터 관여했던 이후락(전 중앙정보부장)에게 풀도록 했다. MBC 지분과 육영재단도 모두 박 대통령 자녀들이 맡도록 했다. 10·26 직후 청와대 비서실장 방 금고에서 나온 수표와 현금 다발 9억5000만원이 박정희 대통령의 개인 자금이란 진술에 따라 박근혜씨에게 전달했다. 얼마 후 박씨가 10·26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 달라며 3억5000만원을 가져왔다. 1996년 검찰이 내가 임의 사용했다고 왜곡 발표했다.”

◆최태민을 전방 격리=“10·26 이후 최태민을 상당 기간 전방의 군부대에 격리시켜 놓았다. 근혜양을 등에 업고 (구국봉사단 등을 통해) 많은 물의를 빚었고 생전의 박 대통령을 괴롭혀 왔다. 처벌을 전제로 수사하진 않았다. 행적을 캐다 보면 대통령과 유족들 명예에 큰 손상을 입히게 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런 조치가 근혜양의 뜻에 맞지 않았는지 모른다. 이후 최태민의 작용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구국봉사단 등의 활동을 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규하 겁박하지 않았다=“정치적 경험이 적고 정당적 배경이 없으며 다소 카리스마가 부족한 최 대통령이었지만 군부의 어느 누구도 대통령의 권위를 경시하거나 훼손하는 것 같은 언동을 보인 일은 없다. 나 역시 부하로서 그 어른을 깍듯이 모셨다. 1980년 8월 최 대통령이 사임하고 사저로 돌아갈 때까지 직접 보거나 통화한 게 70회다. 호감까진 아니어도 신뢰감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후 (내가) 12·12 때 겁박했다거나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도록 했다는 음해에 대해 시종일관 침묵을 지킨 데 대한 아쉬움을 느낀다. ”

◆직선제 개헌 제안=“1987년 6월 17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을 불러 직선제 수용을 전제로 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일언지하에 반대한다고 했다. ‘직선제 개헌을 선택하면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 노 대표에게 ‘1971년 직선제로 치러진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100만 표 차이로 이겼다. 노 대표는 박 대통령보다 얼굴도 잘생기고 말도 잘하고 정치에 때가 묻지 않아 신선하고 인상도 좋다’는 얘기도 했다. 18일 김용갑 민정수석 등이 직선제 수용을 건의했다.

19일 노 대표가 지시를 따르겠다면서 ‘제가 민주화 조치를 건의드리면 각하께서 크게 노해 호통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욱 효과가 있겠다’고 했다. 조치가 자신의 외로운 고심의 산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제안은 사실 왜곡을 넘어 국민을 기만하는 연극을 하자는 것 아닌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권력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 아닌가. 거절했다. 6·29 전날에도 노 대표는 경호실장에게 ‘(내가) 직선제 수용 의사를 밝히면 전 대통령이 자신을 야단치며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노 대표는 참으로 집요했다.”

고정애·이지영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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