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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남에게 보탬 되고 싶어 조금씩 후원 … 벌써 30년이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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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의과대학 교수 출신 윤모(76)씨는 60여 년 전 작은 선물상자의 냄새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6·25전쟁 때 학교에서 받은 선물이었다. 국제구호단체가 한국의 아이들에게 보낸 상자 안에는 공책·색연필 등 학용품이 들어 있었다. 목각인형·요요 등 장난감이 상자에서 나오기도 했다. 선물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렇게 신났다고 한다.

묵묵히 선행 실천, 장기후원자들 #6·25 때 국제구호단체 선물 못 잊어 #26년째 유니세프 기부하는 70대 #NPO 후원자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 #교수 돼 35년간 아이들 돕는 60대 #“가진 게 넘쳐 기부하는 사람은 일부 #액수보다 마음 쓴다는 게 중요하죠”

유니세프에 기부활동을 시작한 이유도 어려운 시절의 설레는 추억 때문이었다. 그는 26년째 유니세프를 통해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 6년 전부터는 월드비전을 통해 개발도상국 아동과 일대일 결연을 맺었다. 의과대학 교수로 정년 퇴임한 이후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수녀원이 운영하는 무료 병원에서 진료 봉사를 한다. 윤씨는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을 때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인간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름과 사진 공개를 거절했다.

생면부지의 타인을 돕고 그 도움을 지속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여러 비영리단체(NPO)에는 윤씨처럼 수십 년간 기부를 이어온 장기후원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선행을 굳이 내세우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는다. “나보다 더 많이, 더 오래 주위 사람들을 돕고 사는 분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안병수(66)·이명숙(62) 부부는 1986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처음 후원을 시작했다. 30년 이상 후원해 지난해 어린이재단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이씨는 “후원을 시작할 때 우리 딸이 네 살이었다. 딸을 키우면서 남편과 ‘남에게 큰 도움은 안 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해 보자’고 마음먹은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어린이재단에서 연락 오기 전까지 30년이 넘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부부에게는 후원으로 맺게 된 특별한 인연도 있다. 27년 전 부부의 후원 아동이던 김모(41)씨다. 주위에 돌봐 줄 어른이 없었던 김씨를 부부는 아들처럼 품었다. 김씨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는 함께 강원도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명절이면 항상 찾아가 선물을 챙겨 줬다.

이씨는 “수능을 칠 때 내가 싸 준 도시락을 갖고 갔다. 군 입대와 결혼식도 함께했는데 그 아이가 벌써 자식 둘이 있는 가장이 됐다”고 웃었다. 이씨 부부는 “큰 도움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고 입을 모았다. 언제까지 기부를 할 생각인지 묻자 “지금보다 여유가 없어지더라도 계속 도움이 필요한 곳에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곧 노령연금도 나올 테니…”라고 답하며 웃었다.

한영태(69) 서울신학대 명예교수는 숨은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은 경우다. 70년대 말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NPO 후원자들로부터 장학금을 지원받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하루는 현지에서 후원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처음 보게 된 후원자들의 모습은 한 교수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고 한다. 한 교수는 “다들 여유롭게 잘사는 분인 줄 알았는데 농부 아니면 노동자였다. 그들의 손이 나보다도 거칠었다”고 기억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82년 9월 교수로 임용되면서 한 교수는 ‘이제 내가 받은 도움을 갚을 때다’는 생각으로 월드비전에 기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운증후군인 국내 유아 2명을 후원했다. 돌이 안 된 갓난아이였다. 그 아이들이 10대가 됐을 때 한 교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도와주셔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고 적혀 있었다. 90년대 초에는 학생 시절 자신이 후원을 받았던 것처럼 조선족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한 교수는 “거기서 의사가 된 애들이 2명이나 된다. 만나면 예전엔 내가 밥을 사 줬는데 이젠 내가 그 친구들한테 얻어먹는다”고 자랑했다. 한 교수는 지금도 부산에 사는 중학생 1명을 계속 후원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창립연도인 91년부터 후원을 해 온 전병도(54)씨는 “돈 얼마 내지도 않는데…”라며 머쓱해했다. 91년은 전씨 부부에게 첫아이가 생긴 해였다. 우연히 고아원 아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전씨는 “어른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야 하는 어린이들인데 그렇지 못한 아이가 많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후원활동이라고 해 봐야 매달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도록 두는 게 전부”라고 했다.

후원을 시작하고 5~6년쯤 뒤 전씨는 한 지체장애 아동의 사진을 받았다. 자신이 후원하는 아동의 사진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사진을 보는데 가슴이 아팠다. 더 해 주고 싶은데 내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속상한 마음에 굿네이버스에 전화를 걸어 ‘아이 사진을 안 보내 주셔도 된다’고 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얼마 전 굿네이버스에서 보낸 후원 25주년 감사액자를 받고서도 전씨는 “이런 거 보내는 게 다 돈인데, 이런 데 돈 쓰지 말고 더 좋은 곳에 돈을 써 달라”는 전화를 걸었다.

전씨는 “가진 게 넘쳐 기부하는 사람은 일부다. 다만 얼마를 기부하든 마음을 쓴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장기후원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교수는 “개인이 사회를 통째로 바꾸기는 어렵다. 작은 선행이 쌓여 사회를 좀 더 살기 좋게, 밝게 바꾸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홍상지·정종훈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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