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촛불 혁명의 부작용이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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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탈(脫)이데올로기의 세상이 된 요즘, 이념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덧없어진 모양이다. 정확히 100년 전인 1917년 러시아에서는 르네상스·신대륙 발견에 맞먹을 두 개의 중대한 사건이 잇달았다.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전제 군주 니콜라스 2세를 쫓아낸 ‘2월 혁명’, 그리고 8개월 후 공산 체제를 탄생시킨 ‘볼셰비키 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성취에 취한 독선주의 경계해야 #‘박근혜 정책’ 무조건 폐기 곤란

이 땅에서도 100년 전 러시아를 연구하는 젊은 혁명가가 차고 넘친 적이 있었다. 문재인·안희정·심상정 등 운동권 출신 대선후보들이 청년이었던 1970, 80년대였다. 이들은 컴컴한 골방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환시대의 논리』 그리고 『러시아 혁명사』 같은 금서이자 필독서들을 탐독하며 사회 변혁을 꿈꿨을 거다.

몇몇 옛 혁명가는 나라의 대권을 노리는 거물로 컸다. 하지만 이젠 누구도 러시아 혁명의 반추는 고사하고 이를 기억하려 들지 않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싫어한다고 러시아조차 2월 혁명을 기리지 않는 판이다. 한국에서 잊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박제가 된 러시아 역사를 굳이 들추는 건 이 케케묵은 2월 혁명이 최순실 사건에서 비롯된 촛불 혁명과 적잖게 닮은 까닭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으로 쫓겨난 니콜라스 2세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겐 공통점이 숱하다. 니콜라스 2세는 박 전 대통령 못지않게 국민은 물론 신하들과도 담을 쌓고 지낸 인물이다. 신하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어 백성을 도탄에 빠트렸다. 터무니없는 인물에 의해 국정 농단이 자행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에 의해 조종당했던 것처럼 니콜라스 2세는 괴승 라스푸틴의 꼭두각시였다. 곁들여 니콜라스 2세는 황태자였던 1891년 일본 여행에 나섰다 러시아를 증오하는 사무라이의 습격을 받고 머리에 칼을 맞는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이로 인해 니콜라스 2세는 평생 일본인을 ‘원숭이’라고 부르며 경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06년 괴한의 습격을 받아 커터칼에 얼굴이 베이는 상처를 입었다. 박 전 대통령이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국민적 저항에 의해 탄핵됐듯 니콜라스 2세도 분노한 러시아 백성이 주도한 2월 혁명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났다.

우리가 주목할 건 혁명 이후의 상황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그랬듯 러시아 혁명 세력도 정의와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하지만 거악 타도에 성공한 혁명 주체는 스스로의 성취에 도취돼 자신들은 무조건 옳다는 독선에 빠지기 쉽다. 러시아 혁명도 레닌 주도의 볼셰비키 독재로 이어졌다.

격변을 치르고 집권한 세력은 옛 정권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부정하기 십상이다. 이런 폐단은 민주주의가 꽃핀 미국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인 오바마가 추진했던 사안이라면 모조리 갈아엎으려 한다. 언론에서 ‘ABO(Anything but Obama·오바마만 아니면 된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이런 과거 부정 풍조는 구조적으로 한국이 훨씬 심할 수밖에 없다. 5년 단임제라는 짧은 임기 내에 인상적인 치적을 남기기 위해 새 정부는 이전 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예외 없이 옛 정권의 정책을 깎아내리거나 말없이 뭉개버린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터라 새 정부에서는 ‘박근혜’란 꼬리표가 붙은 정책은 모두 온전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세상에 절대 선(善)이란 없다. 절대 바꿔서는 안 될 정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걱정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한·일 위안부 합의 등 민감한 사안들이 합리적 검토 아닌 박근혜 작품이란 이유로 몽땅 휴지통에 처박히는 상황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새 정부는 이전 정권이 외국과 맺은 약속이라면 지키는 게 원칙이다. 그래야 외국 정부도 “정권 바뀌면 없던 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 없이 우리를 믿고 일할 게 아닌가.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