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열린사회 NGO] 시민들 "지역현안 우리손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서울 마포구 성산동 주민들은 3년째 성미산에 배수지를 만들려는 서울시의 사업을 저지하고 있다. 주민들은 2001년 모 대학 측이 성미산에 아파트를 짓는다는 계획을 알고는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를 결성했다.

주민들은 올 1월 서울시의 배수지 건설계획이 구체화되자 서울환경운동연합 등과 함께 성미산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는 한편 5월에는 자체적으로 음악회.마라톤대회 등 마을축제도 열면서 저지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문화예술인들은 지난 4월 '문화도시 고양을 생각하는 예술가 모임'을 발족했다. 일산을 문화생산도시로 만들자고 나선 것이다. 지역주민 등 회원 1백여명은 고양시가 추진 중인 일산문화센터 내 오페라 극장 백지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민들이 직접 시민운동에 나서고 있다. 기존의 시민단체에 의존하지 않고 이슈에 따라 자발적으로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지역 현안에 관심을 보이면서, 경우에 따라 시민단체들과 연계해 전국적인 시민운동의 촉매가 되기도 한다.

경기도 용인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대지산을 시민참여형 자연공원으로 만드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1999년부터 대지산 살리기 운동을 벌여온 주민들은 지난해 5월 건교부가 대지산 8만5천평을 녹지보전 지구로 결정하자 다시 자연공원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의 박진섭(朴進燮.40)정책실장은 "1년 전만 해도 네티즌들은 단체 운동을 홍보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직접 나서서 주장하고 모금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이슈화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는 분야는 지역사회.복지 등 다양하다. 특히 생활과 밀착된 분야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단체를 조직하거나 지역의 단체 등에 회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열린사회시민연합의 박홍순(朴弘淳.41) 소장은 "시민들은 과거처럼 비판활동보다는 사회 여러 분야의 조화와 협력 등 건전한 사회문화를 기대하며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문제 이슈화=시민들은 시민단체에 앞서 이슈 제기.대안 제시 등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31일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4개 단체는 '신빈곤 해소를 위한 10대 우선 과제'를 발표, 정부.국회에 자살문제 등 빈곤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들 단체보다 먼저 자살.빈곤 문제 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네티즌들이었다. 네티즌들이 인터넷 사이트.동호회 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자 시민단체들이 '동참'하고 나선 것이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의 정난아(鄭蘭娥.33)기획실장은 "지금은 시민들이 앞서 사회적 문제를 이슈화하고, 이를 시민단체들이 뒤쫓는 형국"이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촛불시위도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시민사회의 요구와 주장을 확대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시민들이 이슈를 선점하고 여기에 시민단체가 동참하는 사례가 늘면서 시민단체와 시민(네티즌)들의 활동영역 간 경계도 무너지고 있다.

녹색연합의 김타균(金他均.36) 정책실장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시민들의 제안이나 활동에 자극받아 동참하면서 시민운동 진영과 네티즌의 영역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 시민운동 주체도 과거의 비정부기구(NGO) 주도에서 시민과 조직의 네트워크로 탈바꿈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시민의 요구를 맞추는 쪽으로 초점을 이동시키며 시민과의 커뮤니티(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대응=시민들의 참여 확대는 단체들에는 시민운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환경운동연합은 최근 사이버 기자를 뽑았다. 시민들의 참여 공간을 넓혀주는 동시에 사회 문제를 시민의 눈으로 보고 기사화함으로써 시민 속으로 파고들자는 취지다.

참여연대는 자체 활동 홍보와 함께 시민들의 참여와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신하고 있다. 참여연대의 이태호(李太鎬.35)정책실장은 "우리 단체가 벌이는 운동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관심있는 내용이면 이를 인터넷에 올려 시민들의 참여기회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NGO 활동가들도 변신하고 있다. 과거처럼 앞에서 이끄는 '지도자'가 아닌, 코디네이터(조정자)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조정자로서 시민들이 과제를 만들고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오기출(吳基出.42)시민정보미디어센터 사무총장은 "시민들이 참여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시민단체들은 시민운동을 대시민 서비스활동으로 인식하고, 시민의 책임.역량을 강화하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호 기자 <hario@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