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1호 법안 ‘트럼프케어’ 좌초, 대규모 감세안도 힘 빠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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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주말 미국 워싱턴 정가의 최대 뉴스는 ‘트럼프케어(미국 건강보험법안)’ 처리 무산이었다. 도널드 트럼프(사진)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자 ‘1호 법안’인 트럼프케어는 오바마케어(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건강보험)를 대체하기 위해 내놓은 작품이다. 그러나 트럼프케어는 미 하원 표결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24일(현지시간) 철회됐다.

트럼프, 공화당 강경파 설득 실패 #의회 제출한 첫 법안 표결도 못해 #경제회복 정책 등 의회 통과 불투명 #미국 증시·달러가치 동시에 하락

트럼프에겐 법원의 ‘반(反)이민 행정명령’ 제동, 연방수사국(FBI)의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에 이어 또 한 번의 정치적 타격이다. 트럼프케어 무산은 미국 안팎에 상당한 파장을 예고한다.

트럼프의 리더십은 대통령 취임 두 달만에 상처를 입었다. 트럼프가 의욕을 보여 온 개혁 정책의 동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핵심 정책 실패는 임기 후반부라면 레임덕의 신호탄으로 간주될 사건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는 지금 벌거벗은 황제처럼 서 있다”고 묘사했다.

워싱턴 정가가 트럼프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트럼프는 향후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우선 트럼프노믹스의 두 축인 세제 개편안(tax reform bill)과 인프라투자법의 의회 통과 전망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 금융시장에선 대규모 감세와 인프라 투자를 골자로 한 트럼프노믹스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지 우려한다. 지난주 후반 미국 증시가 하락하고 달러화 가치가 약세를 보인 것은 이런 불안감 때문이었다.

트럼프 정부는 표면적으로 개혁 입법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Axios)와의 인터뷰에서 “포괄적인 세제 개편은 건강보험 개편보다 훨씬 단순하다(a lot simpler)”고 말했다.

하지만 세제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은 1986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이후 성공한 전례가 없을 정도로 논쟁적인 사안이다. WP는 “트럼프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나머지 과제들이 위기에 몰렸다”고 진단했다.

트럼프케어 무산의 본질은 ‘소통’과 ‘협치’의 실패다. 하원 내 의석 분포만 놓고 보면 트럼프케어 처리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공화당 237석, 민주당 193석으로 공화당은 법안 처리에 필요한 과반(216석)이 훨씬 넘었다. 변수는 공화당 내 강경 보수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의 반발이었다. 그들은 트럼프케어에 대해 “오바마케어를 완전히 지우지 못한 아류”라고 막아섰다.

트럼프는 설득과 타협 대신 밀어붙이기를 선택했다. 그는 24일 공화당 하원 회의장에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을 보내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더는 법안 타협은 없다. 트럼프케어가 싫으면 오바마케어가 그대로 존치된다”는 양자 선택 요구였다. 하지만 트럼프의 일방통행식 강공은 먹히지 않았다. 프리덤 코커스의 저스틴 애머시 의원은 “누군가가 뭘 들고 나타나 이게 최종이라고 하면 그게 바로 독재”라고 반발했다.

NYT “초보 정치인” WP “벌거벗은 황제”

반대파 설득에 실패한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에게 “법안 통과에 필요한 의원 숫자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 직후 백악관은 표결을 강행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자초한 좌절”이라며 “초보 정치인이라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정부의 때 이른 위기감은 남의 일이 아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차기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나라가 갈라진 상황에서 출범한다”며 “누가 되건 대화와 설득을 통해 반대 진영을 끌어안는 소통에 나서지 않으면 트럼프 정부처럼 시작부터 집권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이소아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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