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도시바가 손떼는 영국 원자력회사 인수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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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전력이 일본 도시바가 매각하기로 한 영국 원자력 발전회사 뉴제너레이션(뉴젠)의 지분 인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조환익(사진) 한전 사장은 지난 21일 세종시에서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조 사장은 “자본, 부채를 비롯한 뉴젠의 매각 관련 구조가 정해지면 가장 빨리 뛰어들겠다”고 말했다. 뉴젠은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지분은 도시바(지분 60% 보유)와 프랑스 에너지 기업 엔지(40%)가 보유하고 있다. 2014년부터 도시바가 대주주가 됐고, 영국 북서부 지역인 무어사이드에 원전 3기 건설을 맡고 있다. 이 사업은 2019년에 착공해 2025년 완공이 목표다. 사업비는 150억 파운드(약 21조원)에 이른다.

UAE 원전 수주 후 8년 만에 해외로 #조환익 사장 “뉴젠 인수전 곧 참여” #남아공·사우디에 원전 수출도 추진

한전이 뉴젠 지분을 인수하면 자연스럽게 이 사업에 진출하게 된다. 한전이 해외 원전 사업에 참여한 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가 마지막이다.

한전이 8년 만에 해외 원전 사업에 뛰어들 기회를 잡은 건 도시바의 몰락 때문이다. 가전·반도체가 주력사업이던 도시바는 2006년 원전 관련 핵심기술을 보유한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54억 달러(약 6조원)에 인수했다. 이를 통해 도시바는 세계 원전 시장의 강자로 급부상했다.

그런데 웨스팅하우스가 되려 도시바의 발목을 잡았다. 웨스팅하우스가 2008년 미국 조지아·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수주한 원전 4기의 공사가 지연되며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웨스팅하우스가 2016 회계연도(2016년 4월~2017년 3월)에 낸 손실은 7125억엔(약 7조1000억원)에 이른다. 결국 도시바는 버티지 못하고 가전·반도체 사업 분야와 함께 웨스팅하우스, 뉴젠의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러면서 한전이 웨스팅하우스 및 뉴젠의 지분 인수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조 사장은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 여부에 대해선 “절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한전의 영국 원전 사업 진출은 시장 확대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강동진 HMC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한전이 뉴젠 지분을 인수해 영국 원전 사업에 참여할 경우 추가 원전 수주도 가능할 전망”이라며 “도시바의 몰락으로 세계 원전 산업이 빠르게 개편되는 상황에서 한전의 원전 건설 경쟁력이 부각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조 사장은 다른 해외 원전 사업 진출도 장기적으로 모색하기로 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출도 긴 호흡을 가지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조 사장은 지난 21일 한전 전남 나주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임기가 1년 연장됐다. 2012년 12월 취임한 조 사장은 3년 임기가 끝난 뒤 지난해 2월 1년 연임한데 이어 올해 재연임됐다. 내년 3월까지 임기를 채우면 재직 기간이 5년 3개월로 역대 최장수 한전 사장이 된다. 조 사장은 “사실 (재연임을) 많이 고사했다”라며 “하지만 전력이라는 것이 어떤 경우에도 중단되면 안되는 국가적 현안이라 거절을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기를 팔아서 먹고사는 시대는 끝났다”며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의 기술을 활용해 스마트홈,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분야에 투자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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