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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예선 한중전 열리는 창사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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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국 축구 대표팀 숙소 앞을 경호하고 있는 중국 공안들. 창사(중국)=송지훈 기자

한국 축구 대표팀 숙소 앞을 경호하고 있는 중국 공안들. 창사(중국)=송지훈 기자

며칠째 지겹게 내리던 비가 잠깐 그친 좋은 날이라고 했다. 하지만 도시 분위기는 답답하고 무거웠다. 습도가 높아 후텁지근했고, 시가지 전체가 옅은 안개에 뒤덮여 가시거리도 짧았다. 축구대표팀 숙소에서 만난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중국대표팀은 우리보다 나흘 먼저 도착한 뒤 훈련 시간을 꽁꽁 숨긴 채 비밀 훈련 중이다. 속을 들여다보기 힘든 중국대표팀과 도시 분위기가 딱 맞아 떨어진다"고 했다. 한편으론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의 기로에 선 우리 축구대표팀의 답답한 상황 같기도 했다.

20일 중국 허난성(省)의 성도 창사를 찾았다. 3000여 년에 달하는 유구한 역사와 다채로운 문화 유산을 가진 도시. 중국인들이 '건국의 아버지'라 부르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의 고향이다. 700만 명이 거주하는 내륙의 대표적 소비 도시이자 떠오르는 무역 중심지이자 역사와 문화·경제를 아우르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중국 내 어느 도시보다 지역민들의 자부심이 높다고 알려진 곳이다.

최근 이곳은 축구 열기로 뜨겁다. 오는 23일 창사 허룽 스타디움에서 한국과 중국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6차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창사는 열성적인 축구팬들이 많은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추미(球迷·중국 축구팬을 일컫는 말)'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 대표팀 숙소 호텔에서 만난 첸리쥔씨에게 "한국과의 축구 경기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이 잘 하는 건 인정하지만 창사에서 손쉽게 이기진 못할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첸씨는 "한국전 티켓은 제일 싼 게 180위안(2만9000원)이다. 1000위안(16만원)이 넘는 표도 있다"면서 "중국인들에겐 엄청나게 비싼 표지만 순식간에 다 팔렸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재중동포 축구칼럼니스트 김문성씨는 "중국 축구팬들은 창사를 '푸디(福地·축복의 땅)'라 부른다. 2005년 이후 이곳에서 열린 8차례의 A매치에서 중국이 무패 행진(4승4무)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당초 고지대인 쿤밍에서 한국전을 치를 예정이던 중국축구협회가 장소를 옮긴 것도 창사의 좋은 기운을 받아 한국을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과 관련해 우려를 모으는 반한(反韓) 정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항과 호텔, 대표팀 훈련장을 오가며 만난 현지인들은 모두 친절했다. 창사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기자의 취재비자를 확인한 직원은 "축구 때문에 왔나. 한국에서는 이번 경기 스코어를 어떻게 예상하느냐"며 관심을 보였다.

선수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지난 19일 밤 독일에서 창사로 건너와 대표팀에 합류한 미드필더 구자철(28·아우크스부르크)은 "독일에서 (사드 관련) 뉴스를 접하고 살짝 걱정했지만 이곳 분들이 친절하게 맞아줘 마음을 놓았다. 한국말로 인사하는 중국인들도 있었다"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기운을 얻었다"고 말했다. 우리 대표팀 훈련장인 허난 시민경기장에서 만난 중국 취재진도 "사드는 정치적으로는 민감한 문제지만 스포츠와 연결해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창사 사람들은 열정적이고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다. 우려하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사=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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