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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정남 해독제 쓰기도 전에 사망한 이유…이것 때문에 죽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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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피살된 김정남의 사망원인을 설명한 정부기관의 문건이 20일 최초로 나왔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이상민 박사는 ‘주간 국방논단’에서 김정남 암살에 쓰인 물질은 무엇인지, 왜 사용됐는지 설명했다. 그는 대량살상무기(WMD)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이 박사는 “김정남 암살에는 신경작용제 ‘VX’ 뿐 아니라 다른 물질도 함께 사용됐다”며 김정남 암살에 두 명의 용의자가 직접 가담한 이유를 설명했다. 일종의 ‘촉매제’를 사용해 ‘VX’의 흡수를 도왔다는 분석이다. 이 박사는 “용의자 두 명 중 한사람이 김정남에게 ‘VX’를 묻혔고 다른 한명은 ‘아민’(amine)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아민을 사용할 경우 흡수율이 높아진다는 생체반응 실험 결과도 있다.

국방연구원 이상민 박사, "김정남 암살에 두 가지 물질 사용돼" #북한 치밀했다…효과 빨리 나오도록 '아민' 사용한 듯 #'VX' 만진 흐엉 경련증상, '아민' 묻혔던 아이샤는 정상 #해독제 사용할 경우 생존확률 올라가, 지하철역에 배치필요

베트남인 도안 티 흐엉(29, 왼쪽),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5)는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말레이시아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흐엉이 'VX'를 아이샤는 '아민'을 김정남 얼굴에 묻혔던 것으로 파악된다.[사진 중앙포토]

베트남인 도안 티 흐엉(29, 왼쪽),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5)는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말레이시아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흐엉이 'VX'를 아이샤는 '아민'을 김정남 얼굴에 묻혔던 것으로 파악된다.[사진 중앙포토]


신경작용제 ‘VX’는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한 물질이다. 얼굴에는 혈관도 많이 있고 눈ㆍ코ㆍ입으로 들어갈 수 있어 손 보다 25배 더 잘 흡수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촉매제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보 관계자는 “북한은 실패할 가능성을 줄이고자 한것”이라며 “김정남이 혹시라도 해독제를 사용할 경우 암살은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정남 치료에 참여한 의료인을 비롯해 당시 공항에서 악취를 맡았다는 증언이 있다. 이 박사는 “김정남 얼굴과 의류 등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난 것은 아민이 묻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정남에게 독성 물질을 묻힌 여성 용의자 중 한명에게서만 구토증상이 나타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북한은 김정남이 사망한 이유는 심장마비라고 주장했다. 용의자들이 ‘VX’를 손으로 사용했다면 두 명 모두 증상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박사는 북한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민을 먼저 바르고 나중에 ‘VX’를 묻힌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하면 아민을 발랐던 용의자는 ‘VX’와 접촉하지 않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VX’를 만졌던 용의자는 김정남과 달리 치명적인 증상이 없다며 다시 한번 암살을 부정했다. 그러나 손바닥은 얼굴보다 흡수가 덜 된다. 또한, 흡수를 낮추는 특수한 물질을 손에 미리 발랐거나 범행 직후 해독제를 투여했을 수 있다. 이 박사는 “사용된 ‘VX’의 양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해독제를 사용하지 않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어도 충분히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현지 영자매체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내 치료소로 옮겨진 김정남 모습을 지난달 18일자 1면에 실었다. [사진 뉴스트레이츠 타임스 캡처]

말레이시아 현지 영자매체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내 치료소로 옮겨진 김정남 모습을 지난달 18일자 1면에 실었다. [사진 뉴스트레이츠 타임스 캡처]


이 박사의 분석과 같은 주장도 있다. 암살 임무를 수행했던 공작원 출신 탈북자는 “손에 화학물질 바르고 악수하는 암살 수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정보 당국자는 흡수를 낮추는 물질로 ‘테프론’(Teflon)을 거론했다. 그는 “이달 초 관계기관에서 김정남 암살 분석 결과를 총리실에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민을 사용했다는 이 박사의 분석에 대해서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살 용의자들이 ‘VX’를 사용한 이유는 또 있다. ‘VX’는 다른 신경작용제와 달리 휘발성이 낮다. 이 때문에 보관과 이동에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북한으로 도피한 용의자들이 콘도에서 독성 물질인 ‘VX’를 제조한 뒤, 공항으로 가져가던 도중에 아무런 사고도 없었던 이유다.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은 지난달 23일 이들의 숙소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 다량의 화학물질을 발견했다고 밝힌바 있다. 관계자는 “유리병에 담고 이중으로 밀봉하면서 중간에 숯을 넣어 여과장치를 만들 경우 공기중 누출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수포제에 오염된 손은 겉으로 증상이 나타난다. [사진 중앙포토]

수포제에 오염된 손은 겉으로 증상이 나타난다. [사진 중앙포토]

이 박사는 김정남 암살에 신경작용제가 왜 사용됐는지도 설명했다. 화학무기에 쓰이는 작용제 중 혈액ㆍ질식ㆍ수포제를 사용할 경우 증상이 독특하거나 피부 등에 증거가 남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신경작용제는 신경에 직접 작용하고, 겉으로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심장마비로 위장하기 쉽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신경작용제는 ‘VX’ 뿐 아니라 ‘GA(tabun)’ㆍ‘GB(sarin)’ㆍ‘GD(soman)’ 등도 있다. 이 박사는 그 중에서 ‘VX’를 사용한 이유를 “신경작용제 중 독성이 가장 강해 치사량이 주사기 한방울(10㎎ㆍ흡입량 기준)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VX’ 물질은 기화성이 낮아 오염지역은 제한된다. 평시에 테러 또는 전시에 포격ㆍ미사일 공격을 받아도 특정 구역만 피해를 입는다. 또한, 해독제(주사키드)를 즉각 투여하면 생존률이 매우 높다. 신경 손상이 진행되기 전에 현장에서 빠른 조치를 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해독제는 군 부대에만 준비되어 있다. 이 박사는 “지하철역 등 민간 분야 배치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용한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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