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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혁명70주년 꿈과 현실|"멀고도 험한 개혁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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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스탈린은 엄청난 모순투성이의 인물이었다. 인민에 대한 그의 죄과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 투쟁에 이론의 여지가 없는 기여를 했다.』 7일 소련 볼셰비키혁명 70주년 기념행사의 막을 연 2일,「고르바초프」공산당서기장의 이 연설 대목은 지금 소련사회가 처해있는 현실을 극명하게 상징해주고 있다.
혁명후 70년 동안 있었던 모순과 병폐를 척결하겠다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의지를 보여주면서도 개혁반대파의 도전을 만만치 않게 받고 있음을 이 구절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그가 서기장에 취임한 이래 소련사회나 외국의 눈으로 보더라도 숨가쁠 만큼 경직된 사회와 침체된 경제를 재편성하려고 시도해 왔다. 지난 70여년 동안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솔직성으로 소련보도매체들은 지금까지 숨겨져 왔던 소련사회의 비리와 금기 등을 깨뜨려 왔다.
그러나 당과 관료기구의 반발은 밖에서 알려졌던 것보다 엄청나다는 사실을 「고르바초프」의 이번 연설은 보여주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등장으로 개혁파건 보수파건 모두가 불안정한상태에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다. 그 결과에 따라 70년을 맞은 소련사회주의의 방향이 결정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혁명이래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농업국가를 공업국가로 성장시켰으나 1950년대에 들어서고서는 다시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공업국가로 뒤쳐지기 시작한 소련을 다시 선진공업국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은 「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도 여러 차례 해 왔었다.
「고르바초프」역시 이런 기치를 내걸고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공개주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표방하며 또 한차례의 혁명을 시도해 왔다. 기업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당관료를 비밀선거로 선출하고 상층부의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노동자의 나태한 기강을 바로 잡는다는 「고르바초프」의 꿈은 처음 매우 신선한 듯 보였다.
그래서 2년 남짓 많은 고급당관료가 교체되고 군·경찰에까지 손을 대며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을 듯이 보였다. 그러나 70년 동안 보존돼온 체제가 「고르바초프」의 이러한 노력으로 단숨에 용해되기에는 너무 응고돼있다.
개혁파의 하나인 「노보스티」통신사사장 「발렌틴·팔린」이 말했듯이 『새로운 개혁에 대한 저항이 음양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여러 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안일하게 기존이익을 지키려는 오랜 볼셰비키들은 심지어 심한 모멸감까지 느낀 듯『우리는 벌써 70년을 경험했다. 이제 새삼 민주주의를 우리가 배워야 하는가』라고 빈정거리고 있다는 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러한 저항은 고위층에서 뿐만 아니라 중견관리, 심지어 하층노동자·농민 쪽에서도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미「고르바초프」에 대한 암살기도소문이 4차례나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부패혐의로 체포됐다가 감옥에서 사망한 한 당간부의 장례식에 많은 조문객들이 관을 시내로 메고나와 혁명 기념비 옆에 놓아 「새로운 것은 모두 장례 지내겠다」는 반항시위까지 나왔다.
더 많은 일을 해야된다는 말을 듣는 노동자들은 능률급을 시행하여 대량해고라든가 인플레가 오게될 것이 두려워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소극적이다. 익숙해져 온 사회체제에서 편안히 지내려는 계층에게서「고르바초프」는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 하고 있다고 이들은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정책의 브레인 중 한사람으로 알려진 여류사회학자 「타차냐·사슬라브스카야」는 이를 두고 『그들은 경제적 기득권에 탐닉해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울 생각도 없고 자기네 이익을 다른 사람이나 사회전체와 나누어 가질 생각이 없다』 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요소가 「고르바초프」의 정력적인 노력을 가로막고 있다. 「레닌」이 말했듯이 『혁명이 성공하려면 지배계층이 옛날같이 상투적인 방법으로 통치할 수 없어야 됨은 물론 피지배자들도 옛식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변화를 요구해야 된다』는 것은 「고르바초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래서 「고르바초프」는 2일의 볼셰비키혁명 70주년기념 연설에서 「스탈린」을 두고 『용서할 수는 없지만 기여한 업적도 분명하다』고 엉거주춤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지난 여름 7주일간 갖가지 풍문 속에서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던 그가 「휴양하며 70주년기념 연설내용을 구상했던」그 연설에서 말한 것이다.
그래도 「고르바초프」는 그의 길을 가려 할 것이다. 이 길은 「고르바초프」의 말대로 『평탄한 길을 산보하는 것이 아니고 전혀 길이 없는 험한 산길을 오르는 등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련의 이런 경험은 다른 공산국가에도 없으란 법도 없다.
중공의 개방정책도 어느 정도 그런 저항에 부닥쳐 왔었고 그런 상황에 있다. 소련과 다른 점이 있다면 중공을 포함한 다른 공산국들의 「공산혁명」이 모두 2차대전후 이루어졌다는데서 70년이 아닌 40여년의 경험으로 덜 경직됐다는데서 약간 순탄할지도 모른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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