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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 전 총서기 부인 리자오 별세

중앙일보

입력

중국의 개혁파 지도자였던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부인 리자오(李昭)가 11일 베이징 셰허(協和)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96세.

1952년 스자좡(石家莊)에서 촬영한 후야오방(좌)과 리자오 사진 [사진=봉황망 캡처]

1952년 스자좡(石家莊)에서 촬영한 후야오방(좌)과 리자오 사진 [사진=봉황망 캡처]

후 전 총서기의 셋째 아들 후더화(胡德華)는 “이날 오후 4시18분 모친은 고통없이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말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12일 보도했다.

리자오는 1921년 12월 안후이(安徽)성 쑤청(宿城)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리수슈(李淑秀). 39년 공산당 근거지였던 옌안(延安)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했다. 이 때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총정치부 조직부장이던 후야오방과 교제를 시작해 41년 결혼했다.

후와 리는 결혼 전 ▶먼저 뜻이 맞아야 한다, ▶가정을 이룬 뒤에도 공동의 사업을 잊지 않는다, ▶엄준한 시험을 견디며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 돕고 격려한다는 약법삼장을 맺었다고 알려진다. 이들은 슬하에 개혁성향의 이론지 옌황춘추(炎黃春秋)의 후더화 전 부사장 등 3남 1녀를 뒀다.

 리자오는 49년 신중국 성립 이후 베이징시 방적공업국 당서기를 역임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후야오방은 중앙조직부장에 취임해 문혁 기간 동안 억울하게 자본주의 추종자(走資派)로 몰렸던 이들을 복권시키는 업무를 담당했다. 이때 리자오는 남편 업무를 도와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접수하는 창구 역할을 도맡았다.

89년 4월 15일 후 전총서기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후 후야오방 추모 활동은 89년 민주화 운동과 6·4 천안문 참극의 도화선이 됐다.

장시성 궁칭청에 안장된 후야오방 전 총서기 비문에 세겨진 리자오의 비문 “공명정대하며 사심도 부끄러움도 없다(光明磊落 無私無愧)“ [사진=인터넷 캡처]

장시성 궁칭청에 안장된 후야오방 전 총서기 비문에 세겨진 리자오의 비문 “공명정대하며 사심도 부끄러움도 없다(光明磊落 無私無愧)“ [사진=인터넷 캡처]

90년 리자오는 후야오방의 유골을 바바오산(八寶山) 열사묘지에서 후가 생전에 세운 장시(江西)성 궁칭청(共靑城)으로 이장할 것을 당중앙에 요청했다. 리자오는 남편의 비석에 “공명정대하며 사심도 부끄러움도 없다(光明磊落 無私無愧)“는 비문을 직접 새겼다.

11일 리자오의 부고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사회관계망(SNS) 사이트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춘제(春節·설)를 맞아 리자오에게 문안 인사를 한 사진이 퍼지는 등 추모 열기가 번지고 있다.

원자바오 전 총리가 춘절을 맞아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부인 리자오에게 새해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인터넷 캡처]

원자바오 전 총리가 춘절을 맞아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부인 리자오에게 새해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인터넷 캡처]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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