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취업문 별난 이름으로 뚫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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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나일강이 범람하듯 회사의 수익이 넘쳐나도록 하겠습니다."

"강한 기업 삼천리에 강한 힘을 불어 넣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갈고 닦은 것들은 오늘날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지난해 국내 기업 세 곳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면접 내용이다.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 같지만 각각의 발언 속엔 지원자의 이름이 숨어 있다. 다국적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의 항암제 영업사원 나일강(26)씨, 삼천리의 강한힘(27)씨, 명품 수입업체 스타럭스의 오늘날(28)씨가 그 주인공이다.

청년실업 문제가 불거지고 대학가에 취업 재수생이 넘쳐났던 2005년, 이들은 자신이 원하던 회사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이들은 자신의 독특한 이름을 부각하는 전략이 주효했다고 입을 모은다.

약대 출신으로 제약회사 영업직에 도전한 나씨는 입사지원서를 쓸 때나 자기소개를 할 때 항상 '제 이름은 나일강입니다'로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열정과 기업을 풍요롭게 할 비전 등을 소개했다. 정기적인 범람으로 이집트 땅을 비옥하게 해 온 나일강의 역사는 이같은 나씨의 포부를 설명하는데 '딱'이었다. 일단 이름으로 주목을 받고 나서 다음 이야기를 풀어가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고 한다.

강씨는 '세상을 강하게 살라'는 아버지의 소망이 담긴 이름 덕분에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공사장 잡부, 주유소 주유원, 음식점 종업원, 술집 웨이터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강하게' 자랐다. 고등학교 때부터 근육을 키워 온 '몸짱'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경력과 이름을 앞세워 강씨는 지난해 말 삼천리 공채에 합격, 현재 남부지사가 있는 경기도 수원에서 일하고 있다. 강씨는 "2년제 대학 출신이라 동기들에 비해 위축될 수 있었지만 이름만큼 당당하려 했던 게 좋은 인상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게스 핸드백의 영업.마케팅을 맡고 있는 오씨는 이름 덕분에 원하던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모 기업에 취업했던 오씨는 해외 명품 관련 일을 하고 싶어 2004년 회사를 그만두고 스타럭스 문을 두드렸다. 면접까지 무사히 치렀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회사 사정상 채용계획이 취소된 것이다. 오씨는 자신의 아이디어와 사업 전략 등을 꾸준히 회사로 보냈다. 업체 측에선 이름도 특이한 사람이 시키지도 않은 자료를 계속 보내오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 초 새 채용계획이 세워지면서 오씨에게 제일 먼저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고 단번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하는 등 어려움도 많았다. 나씨는 대학시절 특이한 이름 때문에 한 번도 대리출석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씨는 중학교 시절 통장을 만들러 은행에 갔다가 "위조 학생증을 들고 왔다"며 혼쭐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세 명 모두 특이한 이름으로 사는 것에 대해 '대만족'이라고 했다. 전반적으로 '실(失)'보다는 '득(得)'이 많기 때문이란다. 미혼인 강씨는 자식 이름까지 정해놨다고 한다. 물론 독특하면서 아들.딸 상관없이 어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해라'. 성을 붙여 읽으면 '강해라'가 된다.

글=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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