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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팬과 전쟁 중, 설리는 왜 논란 아이콘이 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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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설리는 클럽에서 키스 마크가 잔뜩 찍힌 얼굴로 사진을 찍어 논란이 일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캡처]

설리는 클럽에서 키스 마크가 잔뜩 찍힌 얼굴로 사진을 찍어 논란이 일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캡처]

한국에서 여자 아이돌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걸그룹 에프엑스(f(x)) 출신 설리(23)는 이에 가장 흥미로운 대답을 줄 수 있는 인물이다. 지난 2014년 8월 힙합 그룹 다이나믹 듀오의 최자(37)와 공개 열애를 시작한 이듬해 몸담고 있던 그룹을 탈퇴하고 배우로 전향했지만, 작품보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서 주로 활동하는 셀러브리티가 되었기 때문이다.

14세 연상 남친과 결별로 다시 화제 #걸그룹 출신의 인스타그램 스타 #도발적 사진, 당돌한 연애, 까칠 발언 #SNS에 지지·비난 극명하게 갈려 #“무대선 섹시하게, 평소엔 청순하게 #대중들의 이율배반적 심리” 분석도

설리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즉시 기사화될 만큼 화제가 된다. 예술성을 높게 사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롤리타·노브라 등에 대한 악플도 끊이질 않는다.

설리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즉시 기사화될 만큼 화제가 된다. 예술성을 높게 사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롤리타·노브라 등에 대한 악플도 끊이질 않는다.

아마도 ‘자의 반 타의 반’에 의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팬들은 열다섯에 데뷔해 가장 소녀 같은 이미지로 사랑받던 그녀의 변신을 이해하지 못했고, 14살 차이가 나는 남자친구와 열애로 “무대에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최강 남자’라는 특정 신체 부위가 부각된 최자의 예명은 이 같은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설리가 당돌하게 사랑을 표현하고,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사진을 올리고,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수록 대중의 비난은 거세졌다.

지난 6일 마침내 이들의 2년 7개월간의 연애가 종지부를 찍은 사실이 알려지자 SNS상에는 다시금 폭격이 시작됐다. 한 성인 여성이 자유의사에 따라 한 남자를 만나고 헤어졌을 뿐인데 “이건 결별이 아니라 이혼급” “이래서 공개 연애하면 여자만 손해” 등 세상이 끝난 듯 말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설리는 이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간 ‘럽스타그램’으로 불리던 인스타 계정을 닫지도 않고, 과거 연애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둔 채, 환하게 웃는 사진을 올렸다. 170만 명의 인스타 팔로워를 거느리고, 기사 제목에 ‘설리’라는 이름만 들어가도 1분에 3000명이 클릭하는 뉴스메이커. 그녀는 정말 세간의 평가처럼 ‘관심종자’인걸까.

#롤리타? 여성 악동의 등장

구하라와 함께 찍은 사진은 비난의 화살이 옮겨가자 삭제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구하라와 함께 찍은 사진은 비난의 화살이옮겨가자 삭제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설리의 사진 중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롤리타 콤플렉스’에 관한 부분이다. 구하라와 몸을 밀착한 설리가 ‘존슨즈 베이비 오일’이라고 쓰여진 티셔츠 한 장을 같이 뒤집어쓴 사진, 미소녀 전문 사진가로 알려진 로타가 찍은 속옷 차림의 사진들이다. 앞서 ‘제제’ 가사와 화보집으로 롤리타 논란이 불거진 아이유나 수지가 악성 댓글 및 허위사실 유포로 네티즌들을 고소한 데 반해 설리는 “로리타 로리타 적당히 해라. 알맞은 데 가서 욕하렴, 내 이쁜 얼굴이나 보고”라는 글로 정면반박했다. 통상 소속사(SM엔터테인먼트)가 관리하는 아이돌 SNS와 달리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설리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즉시 기사화될 만큼 화제가 된다. 예술성을 높게 사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롤리타·노브라 등에 대한 악플도 끊이질 않는다.

설리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즉시 기사화될 만큼 화제가 된다. 예술성을 높게 사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롤리타·노브라 등에 대한 악플도 끊이질 않는다.

“공인으로서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비난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녀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주영민 IT 마케터는 페이스북에 “롤리타 코드의 핵심은 사춘기 이전의 미발육된 신체인데 설리는 가슴과 엉덩이 뿐만 아니라 유두까지 발육된 성인 여성의 신체를 드러낸다”며 “오히려 어리고 말 잘 듣고 다루기 쉬운 여성상을 원하는 한국 사회의 요구와는 다른 반(反) 롤리타적 행보”라고 썼다.

설리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즉시 기사화될 만큼 화제가 된다. 예술성을 높게 사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롤리타·노브라 등에 대한 악플도 끊이질 않는다.

설리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즉시 기사화될 만큼 화제가 된다. 예술성을 높게 사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롤리타·노브라 등에 대한 악플도 끊이질 않는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설리를 움직이는 동력은 딱 하나”라며 “당신들이 기대하는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청개구리 같은 심리”라고 분석했다. 기존의 한국 사회에서 ‘악동’이 DJ DOC 등으로 대변되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면, 여성 악동의 등장에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는 것이다. 이어 “설리는 대중의 구미메 맞추는 대신 아무도 원치 않는 방식으로 자기 몸을 보여주면서 노브라 운동을 해온 어떤 페미니스트보다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데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순결한 소녀라는 환상

팔·다리를 비튼 모습으로 장애인 비하 논란이 일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인스타그램 캡처]

팔·다리를 비튼 모습으로 장애인 비하 논란이일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인스타그램 캡처]

설리의 특출난 행동에 대해 가장 큰 반감을 느끼는 게 ‘삼촌 부대’라는 것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대 위에서는 얼마든지 섹시 콘셉트로 춤추고 뛰놀아도 되지만, 무대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는 한없이 청순하고 귀여운 소녀로 남아주길 바라는 이율배반적인 심리가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영상사회학을 전공하고 한국외대에서 ‘서브컬처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는 마이클 허트 교수는 “K팝 여성 아이돌들은 여성의 몸을 객체화하는 유교적 전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특히 흰색 원피스, 레이스 양말 등으로 유교적인 순결 이데올로기를 담아내는 한편 짧은 치마, 드러낸 다리 등 패티시즘적 요소가 결합돼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국가적 산업으로서 K팝의 섹시한 이미지는 괜찮고, 아이돌 개인의 섹시한 행동은 잘못 됐다는 논리는 무리가 있다”며 “설리가 롤리타라면 대다수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는 일종의 포르노그래피”라고 덧붙였다.

설리와 팬 혹은 안티 팬과의 관계를 SNS 이용자 간 진화심리학적 관점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전중환 교수는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SNS에 부정적인 사생활을 털어놓는 것은 상대방이 계속 내 편이 될 것임을 신뢰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비록 소수일지언정 나를 응원하는 내 편에 대한 기대심리가 있을 때 가능한 행동이란 얘기다. SNS 자체가 기본적으로 스타와 팬 등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매체라는 점도 주효하다.

반면 이를 욕하면서도 찾아보는 심리에 대해서는 “사람에게는 남의 불행에 대해 갖는 쾌감인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가 존재한다”며 “특히 유명인의 경우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이 더 빨리 전파된다”고 설명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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