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0원 vs 5310원 … 밥값도 차별받는 저소득 정신질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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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 A씨는 지난해 11월 C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한 달간 응급처치·지지요법·작업 및 오락요법 등 세 가지 정신요법 치료를 받았다. 이 중 10분가량의 지지요법 9차례에 9만9000원이 들었다. 이를 포함한 총 진료비는 17만4290원이었다. 같은 병원 B씨도 10분가량의 상담치료인 지지요법(9회)뿐만 아니라 30분짜리 집중상담치료를 거의 매일 받았다. 하지만 그는 54만330원의 진료비를 썼다.

질 낮은 진료받는 의료급여 환자 #정부, 뒤늦게 수가 4.4% 올리지만 #건강보험 환자의 62%에 불과 #집중치료 못하고 값싼 약 처방 #“건보에 연동해 매년 올려야 개선”

같은 조현병 환자인데도 이처럼 진료의 질에 차이가 크다. 이유는 A씨는 의료급여, B씨는 건강보험 환자이기 때문이다. 의료급여란 기초수급자에게 적용하는 거의 무료에 가까운 의료 혜택을 말한다. 입원진료비가 정액(4만3470원)이어서 무조건 이만큼만 적용한다. 그런데 그 액수가 건강보험 진료수가(7만3650원)의 59%에 불과해 진료의 질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2008년 이후 건보 수가는 20%가량 올랐지만 의료급여는 그대로였다. 비판이 거세자 정부는 입원 수가를 4만5400원(2등급 평균 기준)으로 4.4% 올리는 내용을 담은 의료급여법 시행령 개정안을 7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13일부터 적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올려도 건보 수가의 61.6%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의료급여 환자에게는 집중상담 치료 같은 걸 할 수 없을뿐더러 좋은 약을 쓰기 힘들다. A씨의 한 달 약값은 17만4290원으로 B씨(24만280원)보다 훨씬 적었다. A씨에게는 인데놀(15원)·로라반(28원) 같은 싼 약이 주로 처방됐고, B씨에게는 인베가서방정(3295원) 같은 비싼 약도 쓰였다.

홍나래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값이 싼 약을 먹으면 멍하게 먼 산을 보는 등 부작용이 심하지만 새 약은 이런 게 거의 없고 효과가 좋다”며 “이 때문에 의료급여 환자의 사회 복귀가 어려워져 빈곤으로 더 깊게 빠지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런 차별은 식사에서도 발생한다. 입원료에 포함된 의료급여 환자 한 끼 식대 수가는 3390원, 건보 환자는 5310원이다. 대부분의 병원은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밥을 제공하지만 일부 시설의 경우 재료 단가부터 차이가 난다. 모 병원의 경우 의료급여 재료비는 한 끼에 1400~1500원, 건강보험 환자는 1900원이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의료급여 수가 차별은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불평등”이라며 “차별 수가가 장기입원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9일 용인정신병원의 의료급여 환자 차별 실태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 병원은 2011년까지 의료급여 환자는 1식 3찬, 건보 환자는 4찬으로 운영했다. 건보 환자는 24시간 온수가 나왔지만 의료급여는 하루 최대 4시간만 나왔다. 의료급여 환자에게는 헌 옷을 주고 한겨울에도 여름용 이불 한 장만을 더 지급했다가 개선 권고를 받았다.

최재영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회장은 “현행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자가 최적의 치료와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번에 의료급여 정신질환자 외래진료제도를 개선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훨씬 덩치가 큰 입원진료비(전체의 82%)는 제대로 손대지 않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홍나래 교수는 “매년 건보 수가가 올라가는데 의료급여 수가도 여기에 연동해 올려야 의료급여 환자가 좋은 약을 접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의료급여

월 소득이 중위 소득(4인 가구 447만원)의 40%(179만원)에 못 미치는 극빈층이 대상이다. 현재 151만 명이 급여 대상이며 이 중 정신질환자는 27만 명(입원은 7만 명)이다. 입원진료비가 무료(1종 환자)다. 의료급여 의료비에 올해 6조3638억원(지방비 포함)의 예산이 들어가며 정신질환은 8500억원이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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