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핫라인 없어 북한타격론·전술핵 ‘깜깜이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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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분석 │ 미·중·일, 동시에 한국 난타

미국 해군 칼빈슨 핵항공모함의 함재기인 F-18이 출격 준비 중이다. [로이터=뉴스1]

미국 해군 칼빈슨 핵항공모함의 함재기인 F-18이 출격 준비 중이다. [로이터=뉴스1]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이 몰려 있는 ‘K스트리트’의 동북아 전문가들은 요즘 분주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수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사에서도, 2월 말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다. 일종의 ‘의도적 무시’로 여겨졌다. 하지만 물밑 움직임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백악관 안보 참모들은 역대 정부에서 금기시돼 온 ‘선제타격’과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까지 망라해 논의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 좌장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20일 전후로 한·중·일을 방문키로 한 것도 이런 상황 인식 아래 이뤄진 결정이다.

워싱턴서 본 한·미 관계 #미 의회 ‘예방타격’ 등 물밑논의 활발 #당사자 한국은 철저히 배제된 느낌 #주형환 “FTA 양국 이익” 설득차 방미 #트럼프 재협상 공세 무마는 미지수

하지만 당사자인 한국 정부의 목소리는 워싱턴에서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히 배제된 느낌이다. 지난해 10월 초 워싱턴 주미 대사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보여 준 ‘우물 안 개구리’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분위기다.

그때도 선제타격론이 거론됐다. 당시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론이 미국 내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질의하자 안호영 주미대사는 “마이클 멀린 전 합참의장이 말한 것인데, 그는 현재 재야 인사다. 학계 일각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의미 있는 압력을 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대답했다. 미국 조야의 북핵 위기감과는 한참 동떨어진 정세 판단이었다. 선제타격론은 이제 워싱턴에서 더 이상 ‘뉴스’가 아닐 정도다. 미 행정부·의회·싱크탱크 등 여기저기서 단골 메뉴처럼 쏟아내는 주장이 돼 버렸다.

의회에선 아예 북핵 위협요소를 미리 제거하자는 ‘예방타격’의 필요성까지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의회는 갈수록 빠르고 강한 대책을 주문하고 있고, 행정부는 과거엔 말을 꺼내기 힘들었던 과감한 실행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워싱턴에서 거론되고 있는 군사적 옵션의 파장은 막대하다. 대북 선제타격은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한반도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안겨 줄 수 있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감히 할 수 없는 선택”(고위 관계자)이라고 애써 선을 긋고 있다. 워싱턴 조야에선 ‘북한 정권 교체(regime change)’에 대한 언급도 잦아졌다. 지난달 초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비공식적으로 이런 입장을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조만간 공개될 트럼프식 대북정책의 발표를 불안감 속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속수무책이긴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정부에선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5일부터 3박4일간 워싱턴을 찾아 윌버 로스 상무장관, 론 와이든 상원 재무위 간사,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설립자 등을 만난다. 주 장관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양국에 이익이 된다”고 설명할 예정이다. 그러나 모든 무역협정 재검토로 방향을 잡고 칼을 빼든 트럼프 정부의 압박을 그 정도 논리로 무마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이미 지난 1일 “한·미 FTA 이후 적자가 두 배 이상 늘었다”는 연례 보고서를 내놓고 ‘한·미 FTA 재검토’ 공세를 예고한 상태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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