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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뮤지스땅스의 ‘어미벌레’ 최백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지난주 가수 최백호 선생 인터뷰 기사가 여기저기 등장했다.

데뷔 40주년이기에,

그래서 ‘불혹’이라는 타이틀의 새 음반을 내고,

콘서트(3월 11, 12일)를 준비 중이라는 게 인터뷰 요지였다.

그 인터뷰 기사들 중 유독 질문 하나가 눈에 띄었다.

‘마음의 쉼터가 어디냐?’는 질문이었다.

그의 답은 ‘뮤지스땅스’였다.

2015년 서울 아현동을 오가다가 낯선 통유리 박스를 발견했다.

그것은 지하로 통하는 출입구였다. 높이 3m, 길이 7m 정도였다.

처음엔 지하철역 입구인가 했다. 그런데 어디에도 지하철역 안내는 없었다.

다만 출입문 위에 ‘MUSISTANCE’란 글씨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레지스탕스를 연상시키는 낯선 단어였다.

한번은 궁금해서 들어가 보려 했더니 문이 잠겨 있었다.

궁금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작사가 김이나씨를 인터뷰할 때였다.

그녀는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가수로 최백호 선생을 꼽았다.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겠거니 하여 최 선생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오래지 않아 그에게서 답이 왔다.

“감사합니다. ‘뮤지스땅스’ 한번 놀러 오세요.”

오가며 궁금해 했던 바로 그 ‘뮤지스땅스’였다.

이를 계기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유리 박스 문을 열고 지하로 들어섰다.

그곳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지하 공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두 300평 규모였다.

공연장과 2개의 밴드 연습실, 5개의 개인 연습실 등이 갖춰져 있었다.

음악인들을 지원하는 창작 공간이었다.

그가 ‘뮤지스땅스’의 의미부터 설명했다.

“음악의 뮤직(Music)과 레지스탕스(Resistance)의 합성어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지하에서 젊은 밴드들을 감싸 안고 어루만지는 데 적합한 이름 같아

직접 지었어요. 저항이란 이미지 때문인지 반대가 심했는데 등록해 놓고 버텄죠.”

그는 이 지하 공간이 인디밴드의 요람이 될 것이라며 설명을 이었다.

“10년 앞을 내다보고 만들었어요. 연습실이 미국 버클리 음대보다 더 좋다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공연장에서 바로 녹음해 앨범을 만들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개인 연습실의 이용료는 시간당 4500원, 공연장은 한 시간에 1만5000원입니다.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음악인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준비할 때 한 직원이 최 선생을 찾았다.

모니터로 인디밴드를 심사하고 있던 직원이었다.

(직원들은 스스로 ‘땅벌레’라 자칭하고 최 선생을 ‘어미벌레’라 불렀다.)

그 ‘땅벌레’는 ‘어미벌레’에게 심사 마무리를 청했다.

인디밴드를 발굴하는 ‘무소속 프로젝트’의 심사였다.

모니터를 보는 최 선생의 눈빛이 달라졌다. 말도 못 붙일 만큼 신중한 표정으로 변했다.

인터뷰 내내 이웃집 아저씨 같았던 최 선생의 털털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금방 끝난다고 한 마무리 심사, 꽤 오래 걸렸다.

심사 후 사진 촬영을 준비하며 그가 말했다.

“350개 팀이 참가했는데 기획사를 하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친구들이 많아요.

언젠가 ‘뮤지스땅스’ 출신 가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봤던 명함 뒷면의 그림이 떠올랐다.

그 그림은 ‘음표를 키우는 화분’이었다.

지하에서 한국 음악계의 터전을 일구는 ‘어미벌레’가 되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그렇게 심사를 끝낸 후의 사진 촬영, 어깨를 가로질러 멘 카키색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 총을 멘 레지스탕스가 아닌 가방을 멘 ‘뮤지스땅스’로 보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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