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더욱 가까워진 박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충돌 가능성도

중앙일보

입력

28일 오후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정문 좌우로 전혀 다른 피켓 두 개가 등장했다. 왼쪽 피켓에는 '헌재는 조작 선동 언론에 의한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라', 오른쪽 피켓에는 '탄핵은 국민의 염원! 신속한 탄핵 선고로 불을 앞당겨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둘로 갈라진 민심은 98주년을 맞은 이번 3·1절 대규모 찬반 집회로 이어질 전망이다. 박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모임인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기존 집회 장소인 덕수궁 대한문이 아닌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 대형 무대를 설치한다. 

탄기국 관계자는 "서울의 중심 대로가 모두 태극기로 가득 차게될 것이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시민단체 모임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평소처럼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한다. 두 집회가 열리는 시간은 태극기집회가 오후 2시, 촛불집회가 오후 5시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집회 장소는 500m도 채 떨어져 있지 않다.

게다가 탄기국은 집회를 마치고 오후 5시부터 5개 경로로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방면을 행진할 예정이다. 촛불집회 시작 시간과 일치한다. 찬반 집회 양측이 충돌할 가능성은 이전 집회 때보다 더욱 커졌다. 경찰은 돌발상황에 대비해 둘 사이를 분리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대규모 경찰벽과 차벽을 동원할 방침이다.

퇴진행동은 이날 집회 슬로건을 '박근혜 구속 만세! 탄핵 인용 만세!'로 정했다. 퇴진행동은 3·1절을 기념해 노란 리본을 단 태극기를 들 계획이다. 집회에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박원순 서울시장도 발언에 나선다. 기미독립선언문 민족대표 33인을 본떠 만든 '시민대표 33인'은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선언'을 하기로 했다.

탄기국은 오전 11시 기독교 단체들과 함께 '기독교 집회'를 진행한 뒤 오후 2시부터 본 집회인 '3·1 탄핵기각을 위한 전국민 태극기집회'를 연다.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은 "3·1절을 맞아 제2의 건국 선언을 하겠다. 움직여야 할 때 제일 움직이고 먼저 피 흘리겠다"고 말했다. 탄기국 측은 이날 최대 700만 명이 참석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위 때마다 격한 발언과 함께 집회 참가자들이 흔드는 태극기로 인해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태극기 포비아(공포증)'도 생겨나고 있다. 태극기를 활용한 행사가 많고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는 3·1절을 앞둔 시점에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고 있다. 회사원 김모(42)씨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태극기가 '탄핵 반대'파를 지칭하는 것 같아 집 베란다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는 이번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유공자 후손 등과 태극기를 흔들며 '아리랑'을 부를 계획이었지만 태극기집회와의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 참석자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지 않기로 했다.

27일 '태극기를 시위 도구 등으로 사용하는 건 근본적으로 태극기의 신성함을 해치는 행위'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광복회는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의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광복회는 독립운동가와 후손들 약 7000여 명으로 구성된 단체다. 광복회 관계자는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 모두 태극기 사용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어 이를 지적한 것인데 '왜 순수한 우리의 마음을 모독하냐'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쳐 입장이 매우 난처하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