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만행 제암리 학살 순국열사 얼굴 최초 공개...만세운동 나선 안종락 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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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 학살로 희생된 순국열사 안종락 선생(왼쪽)이 아버지 안상옥과 함께 찍은 생전 모습  [사진 제암리 3ㆍ1운동 순국기념관]

제암리 학살로 희생된 순국열사 안종락 선생(왼쪽)이 아버지 안상옥과 함께 찍은 생전 모습 [사진 제암리 3ㆍ1운동 순국기념관]

“장식된 병풍 앞에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부자(父子)지간의 두 남성. 왼쪽에 서 있는 남성은 얼마 후 제암리 교회의 화염 속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한다.”

1919년 4월 15일 경기도 화성 제암리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다 제암리 교회에서 일본군의 학살로 희생된 23명의 순국열사 중 한 명인 안종락 선생(사진 왼쪽) 얘기다. 그의 생전 사진이 공개됐다. 당시 희생된 23명 가운데 사진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화성시 제암리 3ㆍ1운동 순국기념관은 27일 안 선생의 고손(4대) 안효남 씨가 집안의 가보로 보관해 온 사진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제암리 기념관 측은 “고손인 안 씨가 ‘어머니가 어머니의 시어머니로부터 고조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이야기와 함께 사진을 전해 받아 소중하게 가보로 보관해 왔다’는 내용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일본군이 자신들의 만행을 숨기기 위해 불을 지른 안 선생의 집 잿더미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제암리 사건은 1919년 3월 31일 발안 장날 제암리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발단이 됐다. 제암리를 비롯한 인근 주민 1000여 명은 이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후 주민들은 밤마다 뒷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는 등 만세운동을 계속했다.

같은 해 4월 15일 아리타 도시오 중위가 이끈 일본군이 안 선생을 비롯한 15세 이상의 마을 남성을 모아 제암리 교회에 가둔 뒤 창문으로 사격을 가했다. 만세운동을 주동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군은 만행을 감추기 위해 교회에 불을 질렀다. 간신히 빠져나온 이들은 칼을 휘두르는 등 23명 모두를 무참히 살해했다.

제암리 사건이 발생한지 98년이 지났지만 ‘제암리 사건’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희생자 인원수는 물론 이름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당대에 작성된 외국인들의 기록이나 지역 주민들의 증언만 있을 뿐이다. 제암리 기념관이 안 선생의 사진을 공개한 이유다.

제암리 기념관 이혜영 선임연구원은 “제암리 학살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자료발굴과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며 “이번 안종락 선생의 사진 공개를 계기로 다양한 자료들이 모아져 사건의 진상을 상세히 밝힐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화성=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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