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균 먹인 돼지·닭, 구제역·AI에 끄떡없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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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두지포크 농장 돼지들이 프로바이오틱스를 배합한 사료를 먹고 있다. [사진 동물분자유전육종사업단]

두지포크 농장 돼지들이 프로바이오틱스를 배합한 사료를 먹고 있다. [사진 동물분자유전육종사업단]

전북 전주에서 돼지 1만 마리를 키우는 두지포크 농장(대표 장성용)은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모든 돼지에게 유산균으로 알려진 프로바이오틱스를 사료·물에 배합해 먹였다. 두지포크 농장은 사육장 소독과 오·폐수 처리에도 프로바이오틱스를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돼지의 생체 기능이 활성화되고 면역력이 크게 강화됐다. 지난 3년간 이 농장에서는 단 한 마리의 돼지도 구제역에 걸리지 않았고 설사병도 앓지 않았다. 올해 초 이 농장에서 20㎞ 떨어진 정읍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지만 이 농장은 청정 지역으로 남았다.

‘물백신’ 대안으로 뜨는 유용 미생물 #돼지 1만 마리 키우는 전주 농장 #3년간 단 한 마리도 구제역 없어 #유산균 복합제 보급한 경기 광주 #올 최악 AI에도 청정지대로 남아

스트레스가 줄어들면서 돼지 육질도 좋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체에 유익한 오메가-3·유기산·불포화지방산이 일반 돼지보다 최대 10% 이상 함유된 것으로 조사됐다.

두지포크 윤진원(51) 상무는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난 3년간 소독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무항생제 프로바이오틱스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일반 돼지고기에 비해 육질이 부드럽고 신선한 고품질 돈육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바이오틱스는 락토바실러스와 비피더스균으로 이뤄진 유산균의 일종인데 섭취하면 장에서 유익한 작용을 하는 균주다. 1908년 러시아의 과학자 엘리 메치니코프가 불가리아 사람들의 장수 비결로 ‘락토바실러스’ 발효유 섭취를 밝혀내 노벨상을 받으면서 프로바이오틱스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백신을 접종해도 구제역에 걸리는 ‘물백신’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프로바이오틱스 등 유익한 미생물을 활용해 ‘가축전염병 방어 체계’를 구축하는 ‘대안 축산’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프로바이오틱스를 집중적으로 먹인 돼지 농장이 구제역은 물론이고 흔한 설사병에도 걸리지 않는 것으로 효과가 입증됐다.

미생물을 투입해 분뇨를 처리하면 악취도 대폭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 고창에서 돼지 농장을 운영하는 박성구 대표는 악취 문제로 지역 주민과의 마찰이 빈번했다. 고민 끝에 분뇨와 오수를 처리할 때 다량의 미생물을 투입하자 6개월 만에 악취가 거의 사라졌다.

경기도 광주시는 2010년 개발한 구연산, 유산균 복합제로 2011년 전국적으로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가 창궐할 때 안전지대로 남았다. 광주시는 2011년 유산균 복합제를 특허출원하고 농장에 보급한 결과 올해 역대 최악의 AI가 발생했을 때에도 청정 지역으로 남는 등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이들 농장에서 현장 검증을 마친 농촌진흥청 동물분자유전육종사업단은 전북대·단국대·서울대의 미생물학·축산학·수의학 전공 교수들과 함께 축산농가에 생물학적 방어 체계를 확대 구축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구제역과 AI 등 가축 질병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사업단을 이끄는 이학교 단장은 “축산 현장에서 질병원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해결방안을 시도해 정확한 방향을 찾는 것이 안전한 축산물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지름길”이라며 “유용 미생물을 활용한 생물학적 방어 체계 구축은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해결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허진 전북대 수의대 교수는 “유용 미생물을 적극 활용하면 가축의 면역력이 강화되고 백신과 함께 사용하면 항체 형성도 잘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농축산업 미생물 경쟁력 확보를 위해 160억원을 투입해 오는 5월 농축산용 미생물산업육성지원센터를 전북 정읍에 개설하고 산업화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 대안 축산이란=구제역 등 가축질병과 악취 문제를 줄이기 위해 유산균 등 유용한 미생물을 활용해 ‘생물학적 방어시스템’을 구축한 축산의 새로운 실험. 가축이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력을 키워 백신을 보완하는 효과를 노린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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