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96년 전통 백악관 기자단 만찬도 보이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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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4일(현지시간)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의 비공식 브리핑에서 배제된 뉴욕타임스(NYT)·CNN?BBC 등 유력 언론사 기자들이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들 언론사는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 뉴스’ ‘미국인의 적’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던 매체들이다. [워싱턴 로이터=뉴스1]

24일(현지시간)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의 비공식 브리핑에서 배제된 뉴욕타임스(NYT)·CNN?BBC 등 유력 언론사 기자들이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들 언론사는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 뉴스’ ‘미국인의 적’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던 매체들이다. [워싱턴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막말’이 또 다시 외교 문제로 번졌다. ‘반이슬람 행정명령’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타국가를 폄훼하고 자극하는 무리수를 둔 결과다.

대통령 참석해 언론과 소통 관례 #기자단 “트럼프 없이 진행하겠다” #트럼프 “내 친구, 파리 갈 생각 안 해” #테러 거론하며 언급 … 올랑드 불쾌감

지난 24일(현지시간) 미 메릴랜드주 내셔널하버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한 트럼프는 2015년 발생한 프랑스 파리 테러를 거론하며 “친구인 짐이 예전의 파리가 아니라며 지금은 갈 생각도 안한다 ”고 말했다. 이어 “파리와 니스를 봐라. 국가 안보는 국경 안보에서 시작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방의 불행을 이용한 외교적 결례에 프랑스는 즉각 반발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우리는 테러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한다. 동맹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며 “나는 미국에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곡한 표현이지만 불쾌감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18일에도 스웨덴을 대상으로 유사한 실언을 했다. “어젯밤 스웨덴에서 일어난 일을 보라”며 마치 스웨덴에서 테러가 발생한 듯 말한 것이다. 이 때도 스웨덴 정부가 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트럼프의 발언을 부인했다.

한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는 미국 내 보수우파 연합체로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층과 소통하는 장으로 이들의 행사를 이용했다. 그는 “나는 지구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국가(미국)를 대표한다”며 또 다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웠다. “과격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 “멕시코 장벽 건설은 곧 시작된다” “무역협정을 고치겠다”는 등 언론이 비판하는 공약을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5일 올린 트윗. “올해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적혀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5일 올린 트윗. “올해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적혀있다.

트럼프의 노골적인 편가르기 행태는 ‘언론과의 전쟁’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에 ‘가짜 뉴스’라고 비난을 퍼부어 온 트럼프가 급기야 이들과의 관계를 아예 단절하려는 태세를 보인 것이다. 트럼프는 25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올해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유는 공개하지 않은 채 “모두의 건강을 빌며 즐거운 저녁이 되길!”이라고 남겼다.

1921년 시작된 연례 만찬은 언론인·정치인과 각계 명사가 모여 장학금을 모금하는 행사다. 관례적으로 대통령·부통령이 참석했으며, 대통령은 농담을 곁들인 연설을 통해 언론과의 소통을 강화했다. 세계대전 등 격변으로 행사가 취소된 적은 있지만, 캐빈 쿨리지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전직 대통령 15명이 줄곧 참석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암살 미수 사건 직후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한 사례가 있을 뿐이다.

트럼프의 불참 선언에도 백악관 출입기자단협회 측은 “트럼프 없이 진행하겠다”며 4월 29일 예정된 행사를 강행할 뜻을 밝혔다. 제프 메이슨 회장은 성명을 통해 “건강한 공화국에서 독립 언론의 중요한 역할과 언론 자유를 축하하기 위한 행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 “비공식 브리핑에 CNN·NYT 제외”

앞서 24일에도 행정부와 언론의 전례 없는 충돌이 빚어졌다. CNN 등에 따르면 이날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방송 카메라 없이 진행한 ‘프레스 개글(press gaggle·비공식 브리핑)’에 CNN·뉴욕타임스(NYT)·BBC,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 의회전문지 더힐 등 상당수 주류 언론사를 배제시켰다. 트럼프와 비판을 주고받아 온 매체들이다. 대신 트럼프 행정부의 실세 스티브 배넌 수석전략가 겸 선임고문이 창업한 극우 성향의 ‘브레이트바트 뉴스’ 등 보수 매체를 참여시켰다. 이에 항의해 AP통신과 시사주간지 타임이 보이콧하면서 브리핑은 반쪽 짜리가 됐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홍주희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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