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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도 좋고 주인도 좋은 ‘ICT 동물농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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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고바우 농장에 설치된 액상급이시스템. 이를 통해 물과 사료를 배합한 액체 사료가 각 돼지에게 맞춤형으로 공급된다. [사진 농림축산식품부]

고바우 농장에 설치된 액상급이시스템. 이를 통해 물과 사료를 배합한 액체 사료가 각 돼지에게 맞춤형으로 공급된다. [사진 농림축산식품부]

“돼지를 보러 일부러 축사를 갈 필요가 없어요. 스마트폰이면 됩니다.”

시설 첨단화 경기도 안성 고바우 농장 #외부서도 스마트폰으로 시설 제어 #성장 맞춘 사료량 관리로 비용 줄여 #환경 쾌적해 질병 면역력도 높아

설재식(70) 고바우 농장 대표는 경기 안성시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농장에선 1만 마리가 넘는 돼지를 기르고 있다. 일반 돼지 농가와 다른 점은 농장의 모든 설비가 정보통신기술(ICT)로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축사 내부의 상황은 사무실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외부에서도 스마트폰을 통해 제어가 가능하다. 돼지에겐 액상급이시스템을 이용해 사료를 주고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하면 돼지에게 줄 사료 배급량을 설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물과 사료를 배합한 액체 형태의 사료가 돼지에게 자동으로 공급된다. 무선주파수인식장치(RFID)를 이용해 맞춤형 관리도 가능하다. 각 돼지의 성장 수준에 맞도록 사료량 등을 조절해 영양 관리를 하게 된다.

설 대표는 올해로 36년째 양돈업을 하고 있다. 요즘은 아들 수호(40) 씨와 함께 농장을 운영한다. 수호 씨는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 사료량을 살피고 관리할 수 있어 월 사료구매 비용을 예년보다 15% 정도 절약했다”며 “액체 형태의 사료를 맞춤형으로 주다 보니 돼지의 성장 속도도 빨라졌다”고 말했다.

최근 한우와 젖소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병했다. 돼지 농가도 구제역 바이러스가 전염될까 우려하고 있다. 설 대표는 “결국 쾌적한 환경에서 자라난 돼지들이 면역력도 높아 구제역에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동물 복지형 양돈을 추구한다. 돼지가 일정한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지내도록 방마다 센서를 통해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순환식 자동환기 시스템을 갖춰 외부의 공기를 들여오고 오염된 공기를 내보낸다. 임신한 암퇘지를 자유롭게 풀어 기르는 군사 사육방식도 도입했다. 분만을 앞둔 돼지의 경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도 확보했다. 이를 위해 돼지들이 스톨(단칸 우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수호 씨는 “동물복지형 농장은 생산성 면에서 당장 많은 이익이 나진 않지만, 장기적으로 농가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아직 많은 양돈 농가는 고바우 농장 같은 ICT 시설을 꿈꾸기 힘들다. 설 대표와 수호 씨는 2014년 약 5억원을 들여 지금의 돈사를 건립했다. 정부의 양돈 ICT 융복합 확산사업 대상 농가로 선정돼 지원금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설 대표는 “ICT 시설을 설치하기엔 농가의 부담이 여전히 크다”며 “정부 지원 대상 농가 수를 더 늘려야 한다” 고 말했다.

섣부른 도전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수호 씨는 “돼지는 동물이라 ICT로 다 이룰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람이 세심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ICT 장비 관리도 힘들다. 현재 양돈 농가 운영자는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 일반 농가로선 영어로 된 첨단 축사시설을 다루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고바우 농장도 설 대표 보단 수호씨가 축사 시설을 전담해 운영하고 있어 유지가 가능했다. 그는 “ICT 시설을 설치했다 기존 방식으로 돌아가는 농가도 상당히 많다”며 “돼지 사육에 ICT를 활용해 농장을 운영할 역량이 있는지 숙고한 뒤 도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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