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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지주들 땅 팔까 말까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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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2년 전 충북 진천의 논 3000평을 사들여 동네 주민에게 농사를 맡긴 부재지주 박모(50.서울 거주)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 한국농촌공사가 운영하는 농지은행으로부터 최근 농지 임대 위탁 안내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내문에는 '정당한 사유없이 자경하지 않을 경우 처분 이행 강제금 부과 등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박씨는 "현실적으로 직접 농사짓기 어렵기 때문에 팔든지, 농지은행에 위탁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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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지주 바짝 긴장=한국농촌공사는 2001~2005년 농지를 취득한 전국 부재지주(농지 소재지의 시.도 밖 거주자) 45만 명에게 지난해 말 농지 위탁 안내문을 발송했다. 대상 면적이 6억 평에 이른다. 농촌공사는 1996~2000년 매입한 부재지주 20만 명에게도 상반기 중 안내문을 보낼 예정이다. 농촌공사 관계자는 "안내문을 받은 농지 소유자들의 상담이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지법이 시행된 96년 1월 이후 취득분에 대해서는 개인 간 농지 임대(소작 형태)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다만 상속에 따른 취득분이나 8년 자경 후 이농한 농가 소유의 농지는 1만㎡(3025평)까지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이런데도 상당수 외지인들이 투자용으로 농지를 산 뒤 친인척이나 지역 주민에게 농사를 맡기고 임대료로 수확물을 받고 있다.

자경으로 인정받으려면 농사의 절반 이상을 직접 지어야 한다. 농림부 관계자는 "논농사의 경우 파종.농약 살포.수확에는 농지 소유자가 직접 참여해야 한다. 이런 규정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불법 임대나 위장 자경은 쉽지 않게 됐다. 3월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선 허가 목적대로 땅을 이용하지 않는 주인을 신고하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주는 '토파라치'제도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농림부도 9월부터 3개월간 지자체.농촌공사와 공동으로 부재 지주 소유 농지 등을 대상으로 농지 이용 실태조사를 할 예정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위장 자경 등으로 적발될 경우 농지 처분 명령을 내리고 6개월 안에 처분하지 않으면 매년 공시지가의 20%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을 물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처분이냐 위탁이냐=자경을 하기 어려워 농지를 처분하려면 연내 파는 게 좋다. 내년부터 부재지주에 대해선 양도소득세가 중과(60%)되는 데다 장기보유 특별공제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JMK플래닝 진명기 사장은 "경지정리가 잘돼 있거나 항공방제가 가능한 농업진흥지역 농지의 경우 시세 차익을 거두기 어려우므로 처분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자경이 어려운 외지인이 농지를 보유하고 싶을 경우 농지은행에 위탁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지난해 10월부터 도시민들이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아 농지를 구입한 뒤 이를 농지은행에 맡기면 농사를 짓지 않고도 소유할 수 있다. 논 3000평을 맡길 경우 계약기간(5년) 중 매년 180만~220만원의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개발예정지나 소규모 농지는 위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농촌공사 관계자는 "아직 세분화가 끝나지 않은 관리지역(옛 준농림지)의 경우 위탁이 가능하지만 계획관리지역으로 분류되면 재계약이 어렵다"고 말했다. 공동 지분 형태로 농지를 산 경우 모든 투자자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농촌공사는 4월 말부터 농지를 팔려는 사람과 농업인을 연결해주는 농지 매도 위탁사업도 시작할 예정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수수료는 이달 중 입법 예고할 농촌공사법 시행령 개정안에 담을 예정인데 현행 중개 수수료와 비슷하게 책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간과 토지연구소 원구연 소장은 "개발 예정지 농지는 위탁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이런 땅을 갖고 있는 경우 직접 파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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