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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의 맛집] 대구 뼈 5시간 고아 만든 타라우동, 탱탱한 면이 입 안에서 춤을 춘다

중앙일보

입력

| 패션 디자이너 김석원의 ‘이치에’


푸짐한 대구살과 고소한 이리에 감동
싱싱한 해산물 요리, 사시미, 튀김
일본 정통 ‘갓포요리’ 맛볼 수 있어 

압구정동 갓포요리집 ‘이치에’의 대표 메뉴들. 제철 해산물이 담긴 사시미 모둠.

압구정동 갓포요리집 ‘이치에’의 대표 메뉴들. 제철 해산물이 담긴 사시미 모둠.

식사 때마다 ‘밥 or 면’을 고민할 만큼 나는 면을 좋아한다. 이것이 나만의 고민만은 아닐 터. 요즘은 면을 즐기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함께하는 육수와 재료에 대한 관심을 넘어, 면을 만드는 방식과 먹을 때의 식감까지 꼼꼼히 따지며 즐기는 시대다.

특히 우동의 경우는 그 변화가 크다. 가츠오부시가 들어간 쯔유(일본 간장) 장국에 우동 면과 함께 튀김·유부 등의 익숙한 부재료를 넣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즐기던 클래식한 우동 시대는 지났다. 요즘의 우동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신선하고 새로운 재료들과 함께 제대로 된 정식으로도 충분할 만큼 고급스럽게 진화하고 있다.

추운 겨울이면 나는 요맘때만 맛볼 수 있는 별미 우동을 먹으러 단골집으로 간다. 몇 년 전부터 일식주점 트렌드의 정점인 이자카야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가격경쟁이 심해졌고, 결국 원가절감을 위해 직접조리보다는 식재료 유통을 통해 공급받은 반조리 상태의 메뉴 구성이 늘었다. 그러다보니 소비자들은 보다 개성 있고 정성스러운 메뉴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그 니즈를 충족시켜준 새로운 형태의 식당 갓포요리집이 인기를 얻고 있다. 참고로 일본의 ‘갓포 요리’란 고객의 취향에 맞게 전문 조리사가 그 앞에서 직접 조리해 바로 즐길 수 있는 형태의 식당 혹은 주점을 말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나의 단골집 ‘이치에’가 있다. 김건 셰프의 지휘 아래 사시미를 비롯해 싱싱한 해산물요리, 튀김, 볶음 등 다양한 일본 정통 갓포요리를 맛볼 수 있는 집이다. 이미 이치에의 명성은 다양한 음식관련 프로그램에 소개됐으니, 그곳 요리들 중에서 겨울만 되면 꼭 생각나는 특별 메뉴 하나만 추천하련다.

압구정동 갓포요리집 ‘이치에’의 대표 메뉴들. 겨울 별미 타라우동.

압구정동 갓포요리집 ‘이치에’의 대표 메뉴들. 겨울 별미 타라우동.

바로 ‘타라우동’이다. 겨울에만 판매하는 한정메뉴기도 하지만 하루 판매량도 꽤 제한적이다. 식당이 바쁜 날에는 첫 주문 때 타라우동부터 우선 예약해 놓을 정도다. 손님들 사이에 안 보이는 경쟁도 치열하다. 타라우동은 기본적으로 다른 우동과 달리 대구 뼈를 5시간 이상 푹 고아서 국물을 낸다. 당연히 국물 색과 점도가 설렁탕과 비슷하다. 그래서 처음 우동 그릇을 대하면 마치 정성껏 끓인 푸짐한 사골국 한 그릇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국물 맛을 보면 그 담백하고 무거운 맛에 놀란다. 어떻게 이렇게 진한 육수가 생선에서 나올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육수 속에 가득한 탱탱한 대구 살과 이리를 보면서 또 한 번 감동. 육수와 함께하는 이리 맛은 따듯하게 데워진 크리미한 치즈처럼 고소해서 삼키면 속까지 포근해진다.

압구정동 갓포요리집 ‘이치에’의 대표 메뉴들. 시그니처 메뉴 고등어 볶음밥.

압구정동 갓포요리집 ‘이치에’의 대표 메뉴들. 시그니처 메뉴 고등어 볶음밥.

가끔 이렇게 재료들에 집중하다 보면 우동 본연의 맛, 즉 면의 질이 기대 이하라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집의 타라우동 만큼은 기우다. 약간은 반투명하게 보이는 면은 눈에 보이는 질감만 봐도 탄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적당히 익었을 때 입 안에 넣으면 면이 춤춘다고 할 만큼 탱탱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더 대단한 것은 우동을 다 비울 때까지 면의 탄성과 식감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더라도 술안주로 제격이다.

식사를 마치고 밖을 나오니 바람은 더 매서워졌지만 왠지 모르게 덜 추운 것이 몸보신 제대로 한 느낌이다. 다양한 음식과 술을 즐기고 난 후 타라우동 한 그릇이면, 내일 아침엔 숙취 걱정 없이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이치에

주소: 강남구 신사동 656-7 2층(선릉로155길 23-3)

전화번호: 070-4273-4087

영업시간: 오후 6시~밤 12시, 공유일·일요일 휴무

주차: 발렛파킹

메뉴: 모둠생선회 6만3000원~7만8000원, 고등어초절임 2만5000원, 고등어볶음밥 1만6000원, 타라우동 4만원(2~3인용·겨울에만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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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원
패션 디자이너. 아내 윤원정과 함께 브랜드 ‘앤디앤 뎁(ANDY & DEBB)’을 18년째 이끌고 있다. 언제나 포마드를 이용한 2:8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는 젠틀맨. 업계에선 오래된 자타공인 미식가. TV 맛프로 ‘수요미식회’에도 가끔 얼굴을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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