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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불황 엔고 불황 벗고 호황 국면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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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2년 동안 엔고 (엔화강세)불황에서 허덕이던 일본경제가 특수를 맞고 있다. 경기회복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소비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지난70년대 초에 있었던 열도개조 붐이래 최대규모의 건축러시가 일고있다.
건축용 철강재가 미처 수요를 따르지 못해 최근20∼40%씩 가격이 폭등하자 건설생 당국이 한국에서 관련제품을 긴급 수입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판이다.
그동안 엔고불황으로 1천여 기업이 도산했으나 이제 도산기업에 관한 뉴스는 사라졌으며 각 산업분야에서 수익이 어느 만큼 증대되고 해당 기업이 어느 방향으로 변신해 가고 있는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불황은 이미 끝났으며 엔고호황이 바로 문턱에 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 경제기획청이나 중앙은행이 지난7월 경기회복을 선언했을 즈음에는 곳곳에서 「억션」(1억엔 이상의 맨션아파트)투기열이 불었다. 동경에서는 60평 짜리 호화맨션이 17억엔 (약94억 원)에 완보되고 아파트주차장 1대 분이 2천만엔(1억1천만 원)에 거래되고있다.
엔고로 깊게 주름살이 졌던 산업 가운데 불황이 가장 심각했던 철강업계도 이제는 급속히 회복단계에 있다. 인원을 사감하고 고노(용광로)를 순차적으로 폐쇄하던 5대 철강메이커들이 올해 들어서면서부터 실적이 회복되고 있으며 특히 신일본제철은 올해 경상적자 (9월중간 결산기준)가 작년의 5분의1수준에까지 축소될 전망이다.
일본인의 고액저축과 재테크 (재산증식기술) 및 토지가격상승이 소비를 증가시키고 엔고·석유가격 하락에 따른 수임산업의 이익증대, 사상최저 수준의 금리 (현재할인율 2.5%)6조엔 규모의 정부공공사업추진, 수출산업의 경영합리화 등이 최근의 호황 징조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2년의 엔고 불황 하에서도 일본인의 저축 액은 오히려 더욱 불어났다. 작년 개인 저축 액 증가 액은 그 전해에 비해 무려25.6%나 늘어났다. 불황일수록 더 많이 저축한다는 것이 일본국민성임이 분명하다. 엔고로 수출이 더디고 생산이 떨어지자 기업잉여자금의 상당액이 부동산투자로 몰려 작년 동경 땅값은 올림픽 건설 붐이 일어났던 지난64년이래 최고인 평균 23.8%(일부지역은 최고 1천3백%)의 폭등세를 기록했다.
일본 국부의 절반을 차지했던 국토는 작년도 GNP의 3분의2에 필적하는 2백조 엔으로까지 평가되었다.
일본에서 1억엔 이상의 고액납세자 4명 가운데 1명이 토지장자였다는 사실만으로도 토지투기가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알 수 있다.『제품이 안 팔릴 때는 부동산투자에 눈을 돌리라』는 것이 엔고불망 탈출경영의제1조로 여겨졌다.
일본인의 미·유럽 각 국의 주요도시 빌딩매입 등 해외부동산 투자액도 작년 한해동안에 4O억 달러. 이는 한해전보다 무려 3배나 증가한 것이다. 해외금융및 보험업 투자는 2배로 늘어난 72억 달러에 이르렀다.
엔고 덕으로 해외 경매장에서 눈부신 활동을 벌인 사람들은 기업들이 앞세운 일본화상들이다.「고흐」「모네」 「세잔」「르노와르」 등의 유명 작품들을 속속 매입, 국내로 들여왔다. 작년 총 외국그림 수입액은5백23억엔. 엔 입가 세계 미술시장을 지배해버렸다.
기업들은 이밖에 각종 콘서트 개최, 미술관 및 극장건립, 문화상 제정, 출판사업 진출 등 문화시장에 깊숙이 침투했다.
경기회복 국면에서도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공작기계 등 대기업의 「구두쇠 작전」은 그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전력요금이 싼 일요일 출근제도를 채택, 월15억 엔을 절약하고있으며 동경부근에 있는 6백여 개 기업도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종업원들이 평일에 쉬고 일요일에 일하기 때문에 주변 도시의 각종 상점과 음식점도 이에 맞춰 영업 일을 조정, 생활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일본학생들의 미국유학 붐을 일으킨 것도 바로 엔고였다. 국내에서 치르는 수업료만으로도 미 하버드대 등 명문사립대학 입학이 가능할 만큼 엔임 가치가 뛰었다. 미 유학시험 응시자는 작년에 85년 대비 41%나 증가했으며 올해는 이를 능가할 전망이다. 미국의 유수한 13개 대학은 아예 입학생 선발시험관을 동경에 파견했다.
일 기업들은 대미수출전략의 일환으로 유능한 사원들을 미 경영 대학에 입학시켜 미국소비자심리나 구매경향을 본격적으로 연구시키고 있다.
지난 2년 간의 엔고하에서 일본적 경영이라고 불리던 종신 고용 제나 연공 서열 제는 사실상 무너지고 있다.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 능력급채용과 대우제도를 도입했으며 관련기업의 노조는 임금 삭감 안을 받아들이고 목소리를 낮추어 왔다. 기업경영 스타일의 전환·파견·전직·전업이 늘어나면서 일본근로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 모는 공동체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일본은 엔고라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변신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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